'무분별한 사면 없다' 약속 지키며 경제활성화 노린 고심 끝 결정
[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광복절 특별사면에 재벌총수를 포함시키면서도 그 범위를 최소화한 것은 국민대통합과 경제계 사기진작이라는 취지에 충실하면서도, 비리 기업인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고려한 일종의 절충수로 해석된다. 박 대통령 입장에선 다소 운이 좋지 않다고도 볼 수 있는데, 때마침 터진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으로 재벌일가에 대한 여론이 악화된 게 재벌총수 사면 최소화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박 대통령은 13일 임시 국무회의를 통해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자를 확정지으며 "그동안 국민이 공감할 수 있도록 사면을 제한적으로 행사했었는데 광복70주년을 맞아 국민화합과 경제활성화를 이루고 또 국민사기를 진작하기 위해 특별사면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번 특사가 '민생사범 사면을 통한 국민대통합'과 '기업인 사면을 통한 투자ㆍ고용확대'라는 두 측면에서 추진됐다는 의미다.
애초 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던 유력 기업인으로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 구자원 전 LIG그룹 회장, 구본상 전 LIG넥스원 부회장, 구본엽 전 LIG건설 부사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이 있다. 그러나 이들 중에는 징역 4년 중 2년 7개월째 수감생활을 하고 있어 재벌총수로서는 역대 최장기간 복역 중인 최태원 회장만이 대상에 포함됐다. 최 회장은 잔여형이 면제되고 특별복권까지 받게 됨에 따라 등기이사 취임과 그에 따른 SK그룹 투자확대 결정 등 책임경영이 가능해졌다.
김승연 회장의 경우 이미 두 차례 사면을 받은 적이 있다는 점, 구 회장 일가는 기업어음(CP) 사기발행이라는 죄질이 나쁘고 피해자가 많다는 점이 사면 불가 결정에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이 취임 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비리기업인에 대한 무분별한 사면은 하지 않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는 모양새는 갖춘 것이다.
대신 중소기업인 다수를 사면시킴으로써 이들에게 경제대도약에 기여할 기회를 제공한 측면이 눈에 띈다. 박 대통령은 이 같은 결정에 대해 "이번 사면은 생계형 사면을 위주로 하여 다수 서민들과 영세업자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부여하였고, 당면한 과제인 경제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 건설업계, 소프트웨어 업계 등과 일부 기업인도 사면 대상에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건설ㆍ소프트웨어 등 구체적인 업종을 특정해 사면대상을 선정한 것도 이번 사면이 투자ㆍ고용 확대 등 경기부양 효과로 연결돼야 한다는 박 대통령의 강력한 뜻을 반영하고 있다.
다만 광복70주년을 국민적 축제의 장으로 만들어 국민대통합의 계기로 삼겠다는 의중이 성공적일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이번 사면 결정에는 4대 부문 개혁 등 경제활성화에 매진하기 위한 국민적 지지 확보라는 목적이 내재돼 있다. 지난해 세월호참사부터 인사파동, 청와대 내부문건 유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유승민 원내대표 파문 등 끊이지 않는 대형 악재들이 국정운영의 발목을 끊임없이 잡아온 만큼, 이제는 더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절박함의 분출이기도 하다.
이런 측면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국정지지율이 뚜렷한 상승세로 접어들고, 국가적 에너지를 분산시킬 만한 추가 악재가 터지지 않는다는 두 가지 조건이 만족돼야 박 대통령 생각대로 '경제에 매진하는' 임기 후반기를 보낼 여건이 조성되는 셈이다.
한편 이번 특별사면은 지난해 초에 이어 박 대통령 취임 후 두 번째 이루어진 사면이다. 당시 설 명절 특사로 서민생계형 사범 등 총 5925명을 특별사면하고 운전면허 행정제재자 등 총 289만 6499명에 대해 특별감면 조치를 시행한 바 있다.
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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