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 헌법재판관이 위법 또는 위헌을 저지르더라도 탄핵심판 조차 하지 못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현행 제도상으로 헌법재판관이 탄핵될 경우 동료 헌법재판관들이 이를 판결해야 한다. 하지만 복수의 헌법재판관들이 탄핵심판 대상이 될 경우 심판을 내릴 헌법재판관이 없어 심판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최근 발표한 '2015 국감 정책자료'에 따르면 3인 이상의 헌법재판관이 탄핵소추 될 경우 해당 헌법재판관은 직무가 정지되어, 나머지 재판관 6인(또는 그 이하)으로는 심리를 할 수 없게 되므로 탄핵심판 자체가 성립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헌재는 9인이나 7인이 심리를 해서 6인 이상이 찬성하면 탄핵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2명까지 탄핵소추 대상이 되어 직무정지가 되더라도 심판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심판 대상이 3명을 넘어설 경우에는 재판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헌법 65조를 통해 대통령을 비롯해 국무총리·국무위원·행정각부의 장·헌법재판소 재판관·법관·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감사원장·감사위원 등에 대해 법이나 헌법을 위반했을 경우 탄핵심판을 의결할 수 있게 했다. 탄핵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1에 의해 발의되고 대통령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재적의원 과반수가 찬성하면 권한이 정지되고 탄핵심판을 받게 된다.(다만 대통령은 재적의원 3분의 2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헌법 113조는 이와 관련해 헌재가 탄핵 등을 결정할 때 재판관 6명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따라서 9명의 헌법 재판관 가운데 3명이 탄핵소추 되어 직무가 정지되면 심리 자체를 진행할 수 없게 되어 심판 자체를 진행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제도 자체에 모순이 담겨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헌법재판관들이 탄핵되는 경우 법조인으로, 직장 동료로 있었던 헌법재판관들이 동료를 재판을 치러야 한다. 자연히 재판의 공정성 논란 때문에 회피 또는 기피 대상이 지적이 나올 수 있다. 이렇게 될 경우에도 재판이 제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낮아진다.
제도상 문제점 외에도 근본적으로 헌재 역시 탄핵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에 대해 최종 심판을 내리는 것에 대한 문제점 지적도 있다. 권력의 견제와 감시의 균형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헌법 체계는 궁극적으로 입법-사법-행정 각각이 3권 분립되어 견제와 감시를 할 수 있도록 했는데 헌재의 경우에는 탄핵 최종 심판자라는 특수한 지위 때문에 견제와 감시의 축에서 빠져나가 있기 때문이다. 입법부의 견제 장치인 탄핵조차도 헌재 스스로 판단에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헌재는 이를테면 자신의 머리를 스스로 깎을 수 있는지 시험대에 오르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 입법조사처는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탄핵소추의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과 탄핵심판의 기관을 변경하는 방안, 탄핵소추시 권한행사의 정지 여부를 헌법재판소가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복수의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동시에 소추하는 것을 제한하는 방안, 탄핵사건의 심리정족수를 완화하는 방안, 예비재판관을 두는 방안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입법조사처 관계자는 이번 보고서와 관련해 "일부 의원실에서는 그동안 이 문제와 관련해 법률 검토 등 질의가 있었다"며 "문제에 대한 개선이 이뤄지지 않아 이번에 (이번 보고서에) 이 부분을 정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국회 내부에서도 현재의 헌재 탄핵 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보완 논의가 진행되고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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