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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의 영화읽기]'암살', 최동훈표 캐릭터의 진화로 보는 일제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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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변절자에게도 정당성 부여...애국정서에 기대기보단 다양한 인물 통해 시대적 상황 사실적 묘사
극 초반 캐릭터 특징 과감하게 보여줘...난삽해질 수 있는 스토리의 중심 잡아

[이종길의 영화읽기]'암살', 최동훈표 캐릭터의 진화로 보는 일제강점기 암살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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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에는 영화 스포일러가 될 만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범죄의 재구성(2004)', '타짜(2006)', '전우치(2009)', '도둑들(2012).' 최동훈(44) 감독의 영화에서는 한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무국적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한국적 정서를 담지 않는다. 톡톡 튀는 캐릭터, 박진감 넘치는 전개 등 이야기만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그가 박찬욱(52), 봉준호(46), 김지운(51)에 이어 할리우드에 진출할 적임자로 꼽히는 이유다. 22일 개봉한 '암살'도 다르지 않다. 1933년 일제강점기 경성에서 벌어지는 암살단의 활약을 그리면서도 한국적 정서를 거의 넣지 않았다. 그렇다보니 '아나키스트(2000)' 등 동시대의 비슷한 소재를 다룬 이전 영화들과 차이가 있다. 독립군과 친일의 통속적 대립을 기본 틀로 삼지만 독립운동에 참여하는 다양한 자세, 친일로 돌아서는 배경 등을 적나라하게 관찰한다. 영화에서 무국적 아나키스트로 등장하는 하와이 피스톨(하정우)의 시각으로 일제강점기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최 감독은 주요 캐릭터에 나름대로 정당성을 부여했다. 염석진(이정재)에 가장 공을 들였다. 김구를 배신하고 친일로 돌아서는 과정 등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그는 "염석진을 단순히 나쁜 인간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염석진은) 친일이 잘못된 선택이 아니라고 믿는 그 시대의 또 다른 상징적 인물에 가깝다"고 했다. "잘난 애국심에 독립운동을 하는 인간이 얼마나 되겠어" 등의 대사는 결코 이상한 변명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우후죽순처럼 생긴 독립운동 단체들이 자금 등의 문제로 본질을 잃어가는 배경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우직한 독립운동가로 등장하는 속사포(조진웅)가 돈타령을 하기도 한다. 최 감독은 이런 성격을 초반부터 과감하게 보여준다. 그만의 캐릭터 설명법이다. 궁금증을 유발하기보다 어떤 캐릭터인지를 처음부터 분명하게 드러내고 극에 투입한다. 그래서 많은 캐릭터의 등장으로 난잡해질 수 있는 플롯의 중심을 잡는다. 최 감독은 "안옥윤(전지현), 염석진, 속사포, 황덕삼(최덕문) 모두 초반에 어떤 인물인지 나타난다"며 "미리 보여주고 플롯들을 충돌시키면 입체감이 배가될 수 있다"고 했다.

[이종길의 영화읽기]'암살', 최동훈표 캐릭터의 진화로 보는 일제강점기 암살 스틸 컷


할리우드에도 샛깔이 비슷한 영화가 있다. 로버트 알트만의 '숏컷(1993)', 스티븐 소더버그(52)의 '오션스 일레븐(2001)'와 '오션스 트웰브(2004)' 등이다. 다양한 캐릭터들의 플롯이 충돌하면서 파생되는 이야기가 영화 전체를 이끈다. 그런데 이들의 접근 형태는 최 감독과 차이가 있다. '숏컷'은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들을 조합해보려는 기획에서 출발한 영화였다. '오션스 일레븐'의 각본은 테드 그리핀(45)이 진행했다. 소더버그는 촬영, 편집 등 기술적인 작업에 더 많은 힘을 쏟았다. 최 감독은 혼자 시나리오를 도맡는다. 그 과정은 투박하고 고집스럽다. 그는 "큰 틀을 잡고 불균형에 균형을, 비일상적인 소재에 일상적인 소재를 더해 전체적인 균형을 맞춘다. 그 다음부터는 '쓰고 고치고'의 무한반복"이라고 했다. 최 감독은 "'범죄의 재구성' 시나리오 작업 때 제작사로부터 먹물 냄새가 강하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 그 느낌을 덜어내려고 열여섯 번을 갈아엎으니까 글이 좋아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며 "무작정 매달리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암살' 시나리오가 나오기까지는 2년6개월여가 걸렸다. 최 감독은 "1930년대를 조명하기는 쉽지 않았다. 부담이 컸다"고 했다. 동시대의 비슷한 소재를 다룬 영화들은 668만6912명을 불러 모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을 제외하고 모두 흥행에 실패했다. 특히 가장 소재가 흡사한 '아나키스트'는 장동건(43), 정준호(45) 등 톱스타들이 출연했지만 23만6990명에 머물렀다. 대부분이 시대적 배경이나 주제의식에 주목한 나머지 이야기에 탄력을 주지 못했다. 최 감독 역시 사실적인 묘사에 신경을 많이 썼다. 그래서 코믹요소가 줄었고, 전체적인 템포도 전작에 비해 떨어진다. 그렇다고 몰입에 방해될 정도는 아니다. 액션활극과 하드보일드의 성격을 유지하면서 곳곳에 서스펜스 요소를 삽입했다. 염석진과 김구, 안옥윤과 집사(김의성)의 갈등 등이 대표적이다. 다만 중반부에 갈등이 해결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 흐름에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최 감독은 "암살을 소재로 하다 보니 느리게 긴장을 조일 필요가 있었다"며 "이야기에 제동이 걸린 뒤에도 대중이 재미를 느낄 수 있을지 궁금하다"고 했다.


[이종길의 영화읽기]'암살', 최동훈표 캐릭터의 진화로 보는 일제강점기 암살 스틸 컷


불안요소는 한 가지 더 있다. 이야기의 80%를 차지하는 전지현(34)의 연기다. 그는 그동안 밝고 명랑한 캐릭터에 강점을 보였다. '엽기적인 그녀(2001년ㆍ173만5692명)',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2004년ㆍ219만9359명)', '도둑들(1298만3330명)' 등이다. 2013년에는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톱스타 천송이를 발랄하게 표현해 한류스타로까지 자리매김했다. 표정이 다채로워진 면도 있지만 높은 목소리 톤 등의 약점이 오히려 캐릭터를 부각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 이런 효과를 로맨스나 시대물에서 기대하긴 어렵다. 안옥윤과 같이 복잡한 성격의 캐릭터라면 극 전체를 끌고 가는데 한계를 드러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최 감독은 자신이 있었기에 전지현을 했으리라. 물론 30대 중반에 이 정도 액션을 해내는 여배우를 찾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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