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초청영화 '마돈나'의 권소현을 만나다…"그녀는 욕망이 지배하는 사회의 피해자"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칸 국제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받은 '마돈나'에는 윤간, 성추행 등 보기에 불편할 수도 있는 장면이 더러 삽입됐다. 그렇다고 남성폭력의 문제만을 지적하지는 않는다. 신수원(48) 감독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태연자약함을 주요 캐릭터에 모두 담았다"고 했다. 욕망이 지배하는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슬픈 이야기다.
그러나 대다수 관객은 영화에 페미니즘 요소가 가득하다고 입을 모은다. 피해자로 그려지는 미나의 모습이 그만큼 처절하기 때문일 것이다. 신인이나 다름없는 배우 권소현(28)의 연기도 여기에 한몫을 한다. 얼핏 비현실적일 수 있는 극한 캐릭터를 차분하게 그려낸다. 그는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려면 내면에 아픔이 쌓여야 할 것 같았다"며 "촬영을 마칠 때마다 후유증을 겪느라 힘들었다"고 했다.
권소현이 미나처럼 열등감에 사로잡힌 캐릭터를 맡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전까지는 뮤지컬 '뷰티풀 게임', '이블데드', '헤어 스프레이', '투란도트', '그리스' 등에서 주로 쾌활하고 자의식이 강한 역할을 했다. 생애 첫 장편영화에 극한 상황까지 몰리는 인물을 연기해내기 위해 그는 스스로 질문지 300여 개를 만들었다. 단순히 캐릭터를 분석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권소현은 "경험이 미천해서 대학 입시를 준비하듯 임했는데 계속 답을 구하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그게 필요했던 것 같다"고 했다.
신 감독과의 끊임없는 대화가 연기에 가장 도움이 됐다. 다섯 차례 리허설을 함께 하면서 미나의 복잡한 심경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는 "신인배우라서 강압적으로 가르치실 수도 있었을 텐데 뮤지컬이나 연극을 준비할 때처럼 함께 캐릭터를 분석해줬다"며 "현장에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아 연기를 수월하게 해낼 수 있었다"고 했다. 권소현이 생각하는 미나는 뚱뚱한 외모 때문에 소극적으로 행동하는 인물이 아니다. 남들과 환경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변해버린 일상 속의 우리다. 그는 "다른 걸 틀리다고 지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누구나 위축될 수 있다고 본다"며 "미나는 그것을 식욕으로 해결했을 뿐"이라고 했다.
권소현의 실제 성격은 미나와 정반대다. 쾌활하고 활동적이다.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 앞에 서기를 즐겼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해 연기를 공부했을 만큼 진취적이기까지 하다. 그는 상명대 연극학과를 졸업하기 전 뮤지컬 오디션에 참여해 또래보다 일찍 경험을 쌓기도 했다. 충무로의 샛별로 떠올랐지만 생활은 10년 전 그대로다. 여전히 소속사 없이 혼자 차를 운전하며 새로운 일을 찾는다. 신 감독은 "연기에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에서도 극한의 캐릭터를 잘 표현해줬다"고 했다.
권소현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그는 "'마돈나'에서 다른 배우와 호흡을 맞추는 신이 많지 않았다. 내 감정에만 충실하면 그만이었다"며 "카메라 각도 등 영화의 기술적인 측면까지 이해하려면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마돈나' 촬영을 마치고 체중을 18kg이나 뺐다. 권소현은 "평소 체중에 신경을 쓰지 않다 보니 그동안 주인공을 뒷받침해주는 역할만 맡았다. 연기력을 늘릴 기회가 거의 없었다"며 "새로운 캐릭터가 오길 기다리느니 스스로 변하는 게 더 빠를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변신도 배우가 짊어져야 할 의무"라고 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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