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그래, 땅 종대 돈 용기, 끝까지 한 번 가보자!” 땅과 돈의 구분은 없었다. 땅은 곧 돈이었다. 유하 감독의 영화 ‘강남1970’에서 넝마주이였다가 조폭으로 변신한 종대(이민호)와 용기(김래원)가 외치는 말이다. 물론 공간적 배경은 강남이고 시대는 1970년대다. 강남이 ‘부의 상징’으로 태동하던 시기에, 비루한 신분에서 벗어나기 위해, 돈도 빽도 없이 맨몸으로 부딪치며 욕망의 화신으로 살았던 이들이 외쳤던 ‘끝’은 불행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이 영화는 서울시 기획관리관을 지낸 손정목 전 교수의 저서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에 담긴 남서울 개발계획 얘기를 토대로 했다고 한다. 이 책 내용대로라면 강남 개발은 당시 청와대가 주도한 ‘박정희 대선자금 프로젝트’에서 시작됐다.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정부가 몰래 땅을 사놓은 이후에 개발계획을 발표해 막대한 차익을 거뒀다는 것이다. 논밭이던 땅의 가격이 수백배 뛰어오르는 드라마틱한 투기의 전설이 시작됐다.
이후 강남은 대한민국의 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처럼 ‘불패의 신화’를 거듭했다. 10억원을 넘나드는 아파트값, 고층 빌딩의 숲, 사교육 1번지, 고급 술집…. 40여년이 지난 현재 강남은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 부자 동네이자 욕망의 정점이다. ‘강남 아파트’는 물질적인, 세속적인 성공의 잣대가 됐다. 부자 동네의 지자체가 돈이 많은 것도 당연하다. 강남구의 재정자립도는 60% 수준으로 최근 몇 년새 많이 떨어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서울 자치구별 평균에 비해 두 배가량 높다.
역시 강남이었다. 지난해 현대차그룹은 삼성동 옛 한국전력 부지를 감정가격의 3배가 넘는 10조5500억원에 사들였다. 서민들은 가늠하기 어려운 천문학적인 돈이 오가는 곳이 강남이다. 그리고 용도 변경 대가로 현대차그룹이 내놓겠다는 공공기여금만 1조7000억원에 이른다.
강남구는 이 돈을 관할 지역인 영동대로 지하 개발 등에 ‘우선 사용’하라며 소송 불사 등으로 서울시를 압박하고 있다. 서울시는 당연히 강남구 관내 교통대책 비용으로 사용하겠지만 인접한 잠실종합운동장 개발 등에도 같이 쓰겠다고 한다. 강남구가 얘기하는 ‘우선 사용’의 의미는 뭘까. 강남구 지역에 돈이 필요한 곳부터 쓰고 나서 남는 돈으로 다른 곳에 사용하라는 것이다. 돈이란 게 쓰려고 하면 용처 찾기는 어렵지 않다. 그래서 ‘우선 사용’은 ‘대부분 사용’의 또 다른 표현으로 읽힌다.
강남구는 한전 부지 내 변전소 이전·신축의 허가권을 갖고 있다는 점을 대응 카드로 내세웠다. ‘이렇게 나오면 우리가 가진 권한을 활용하겠다’는 건데 허가권을 요구사항 관철의 수단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세련된 대응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런가하면 강남 수서역 주변에 임대주택을 지으려는 서울시의 계획이 최근 시의회에서 보류됐다. 강남구와 주민들의 반대가 주된 이유였다. 가뜩이나 임대주택이 많은 지역이므로 추가적인 임대주택 건립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신혼부부나 대학생들을 위한 맞춤형 임대주택인데 이조차 반대하면 어떡하느냐”고 볼멘소리를 한다. 그래도 반대하는 입장에서 보면 어쨌든 임대주택일 뿐인 모양이다.
밖에서 보면 임대주택은 밀어내고 기여금은 최대한 챙기려는 모양새로 비치지 않겠는가. 강남2015, 여전히 욕망이 넘실대고 있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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