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태진 기자]최근들어 중소기업들이 은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기가 무척이나 수월해졌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1.50%까지 낮추면서 공장시설 등을 담보로 하면 연 3%대 금리로도 대출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장기간 지속되는 경기침체로 돈을 굴리기가 만만찮은 시중은행들이 중소기업을 고객으로 유치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나온 풍속도다. 중소기업인들이 국내 시중은행들의 대출금리를 한 눈에 비교해보고 고를 수 있는 온라인 서비스도 등장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은행 문턱을 넘기 힘들어 제2,3금융권으로 내몰렸던 상황을 감안하면 중소기업 활성화를 위해 참으로 고무적인 시그널임에 틀림없다. 헌데 자칫하면 중소기업의 건전한 발전을 저해할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어 관계부처의 새심한 감시와 관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최근 만난 모 중소기업인은 시중은행의 '대출 마케팅' 때문에 고민이 늘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시설자금을 위해 몇 년 동안 담보대출을 이용하고 있었는데 우대금리를 적용해줄테니 대출금을 늘리면 어떻겠냐는 제의를 받았다"며 "거절하기도 뭐해서 인건비 등 운영자금 용도로 신용대출을 받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금리 혜택도 그닥 보지 못했다"며 불만을 쏟아냈다.
제1금융권이 대출의 문을 열어줬던 중소기업들의 경우 대개 내실 있는 사업구조로 자금 선순환에 문제가 없기 때문에 이러한 불만은 애교 정도로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은행들의 경쟁적인 대출 영업으로 빚을 지게 된 '평범한 중소기업'들은 업계 신뢰도 저하와 금융권 부실 뇌관으로 부상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 중소기업 유관단체 임원은 "시중은행이 영세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대출에 나서는 조건으로 적금 가입을 유도하는 등 꺾기 영업도 불사하고 있다고 들었다"며 "이 경우 급전을 융통하기 위해 은행을 이용하는 형태로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겪었던 부작용이 재연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 2006년 정부가 주택담보대출 규제 강화에 나서자 중소기업 대출 규모가 급격히 늘었다가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와 2010년 키코(KIKO) 손실 여파 등으로 급격히 얼어붙었다. 당시 초우량 중소기업에게조차 은행에서 등을 돌리면서 대출 관행이 경영난 부메랑 역할을 했었다.
자금조달 여건에 있어 차별화가 거의 없는 정책자금이 중소기업을 은행 대출 고객으로 내몰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달 기술금융 대출 이용 중소기업 400곳을 대상으로 만족도 조사를 실시한 결과, 기존 담보 및 보증대출과 비교해 "더 만족한다"는 응답이 51.3%에 그쳤다.
중소기업 절반이 정부에서 자금을 끌어다 쓰나 은행을 이용하나 비슷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금리가 상대적으로 더 저렴한 것도, 대출금액이 더 큰 것도, 대출 기간이 더 긴 것도 아닌 정책자금을 끌어다 쓰기 위해 정부부처를 들락거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중소기업을 창조경제 중심축으로 자리매김시키겠다는 현 정부의 의지에는 박수를 보낸다. 창업에서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이르기까지 성장사다리를 구축하겠다는 비전도 중요하지만, 중소기업인들이 사업 환경 개선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부분에 대한 현실적 배려가 알차게 이뤄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조태진 기자 tj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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