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충무로에서]회의(會議)비에 대한 회의(懷疑)

시계아이콘01분 43초 소요

[충무로에서]회의(會議)비에 대한 회의(懷疑) 김소영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AD

미국에서 귀국한 지 얼마 안 돼 공동연구과제를 진행할 때 깜짝 놀란 일이 있다. 한 연구원이 대뜸 "연구가 곧 종료되는데 연구비가 좀 남았으니 패밀리 레스토랑 상품권을 사면 안 되겠느냐"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연구비랑 레스토랑 상품권이 무슨 상관인지 영문을 몰랐는데 회의비를 식당에 예치(?)하는 것이었다. 그런 관행을 처음 접한지라 놀라기도 했고 또 나랏돈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이 연구비 집행의 허점을 이용한다고 생각하니 적잖이 실망했다.


그러던 나도 지난 몇 년 연구과제를 수행하면서 회의비를 본래 취지와 다르게 사용하는 데 둔감해졌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직장 문화에서 회의비의 부정 또는 부적절한 집행이라는 것은 한 개인의 모럴 해저드만으로 돌릴 수 없는 구조적인 현상이라는 확신이 굳어져갔다. 그럼에도 찜찜한 기분은 어쩔 수가 없어 언제부터인가 내 나름의 원칙을 세우고 애매한 경우에는 그냥 내 개인 카드로 처리하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먼저 회의비 액수가 줄었다. 내 돈인데 식당이나 메뉴를 아무렇게나 고를 수는 없는 것이다. 회의 횟수도 줄어들었다. 웬만하면 근무 시간에 짧고 굵은 회의를 하니 회의의 '질'이 높아졌다. 이처럼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났지만 댓가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잖아도 짠순이 기질이 심한 내가 '진짜 짠순이'라는 좋지 않은 평판이 생긴 것이다. 또 낮에만 회의를 하니 저녁에 학생이나 다른 교수들과 어울려 평소 꺼내기 어려운 학문적 고민과 정다운 학교생활 얘기를 나눌 기회가 줄어들었다.


작년에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에서 연구 회의비 집행 규정 개선에 관해 약 1000명의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가 있다. 국내 연구 문화상 국가연구과제의 연구 회의비 항목이 필요하다는 데에 84%라는 절대 다수가 동의했다. 또 연구 회의비 항목을 없앨 경우 연구자들이 회의비를 개인 경비로 처리해야 함에 따라 연구참여자의 경제적 부담이 증가할 것이라는 응답자가 47%였다. 예전 회의비로 집행했던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또 다른 연구비 부정행위가 발생할 것이라는 의견에도 33%가 동의했다.

재미있는 것은 연구 회의비 항목이 왜 필요 또는 불필요한지 연구자들이 주관식으로 답한 내용이다. 약 100쪽의 보고서에 무려 80쪽이 주관식 의견으로 채워져 있는데 그만큼 할 말이 많았던 모양이다. 필요한 이유로는 위계적인 한국 문화에서 그나마 식사를 통해 수평적 관계로 연구를 논할 수 있다는 점, 연구가 점점 거대ㆍ융합화되면서 공동연구자 사이의 회의 필요성이 늘고 있다는 점, 밤낮 없는 장시간 연구 체제에서 근무시간 외 식대 지출의 불가피성, 연구실ㆍ실험실 외 비공식적인 대화에서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아이디어 교류가 활발해진다는 점 등이다.


불필요한 이유로는 잦은 회의로 인한 연구 능률 저하, 남성 중심의 접대 문화에서 비롯된 회식에서 생산적인 얘기가 오가기 어렵다는 점, 연구자 개인의 외식비 전용 등을 들었다.


이처럼 회의비의 필요성에 대한 찬반 의견이 팽팽한 것은 회의비 오남용이 전적으로 연구자 개인의 윤리 문제도 아니고, 연구 환경 탓만도 아님을 반증한다. 최근 다르파 로봇챌린지에서 우승한 휴보 연구팀의 리더 오준호 카이스트 교수는 연구소 회식을 일 년에 딱 한 번 한다는데 연구환경의 문제라면 왜 같은 한국적 연구문화에서 누구는 회의비를 규정에 맞게 쓰고 누구는 남용하는가? 반대로 개인의 윤리 문제라면 대부분 미국에서 공부한 교수들이 미국에서는 안 그런데 한국에 자리를 잡으면 회의비를 애매하게 쓰게 되는가? 회의비에 대한 나의 회의(懷疑)는 계속되지만 규정을 더 깐깐하게 만든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거라는 데는 확신이 선다.






김소영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12.1510:17
    "눈에 띄게 달라졌다" 36억 투입해 '자동화·자원화' 확 달라진 도축장⑤
    "눈에 띄게 달라졌다" 36억 투입해 '자동화·자원화' 확 달라진 도축장⑤

    정부가 추진해 온 FTA(자유무역협정) 국내보완대책이 도축·가공 현장의 체질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부산·경남권의 핵심 거점인 부경양돈협동조합 통합부경축산물공판장과 대전·충남권의 대전충남양돈농협 산하 포크빌축산물공판장은 시설 현대화를 통해 생산성과 위생, 환경 성과를 동시에 끌어올리며 국내 축산물 경쟁력 강화의 실증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수입 축산물과의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공판장의 역할이 단순

  • 25.12.1209:58
    '똥값의 역전'…70억 투입하자 악취 나던 분뇨가 돈이 됐다 ④
    '똥값의 역전'…70억 투입하자 악취 나던 분뇨가 돈이 됐다 ④

    정부가 추진해 온 자유무역협정(FTA) 국내보완대책이 제주 축산 현장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제주 한라산바이오는 그 대표적인 사례로, 가축분뇨를 재생에너지와 비료로 전환하며 지역 축산업의 환경 기반을 바꾼 시설로 꼽힌다. 제주에서는 약 55만~60만마리의 돼지가 사육되며 하루 2500t 가까운 분뇨가 발생하는데, 한라산바이오는 이를 안정적으로 처리하고 자원화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분뇨가

  • 25.12.1108:51
    멀쩡한 사과 보더니 "이건 썩은 거예요" 장담…진짜 잘라보니 '휘둥그레' 비결은?③
    멀쩡한 사과 보더니 "이건 썩은 거예요" 장담…진짜 잘라보니 '휘둥그레' 비결은?③

    "자유무역협정(FTA) 국내 보완대책을 통해 설립된 '충주 거점 산지유통센터(APC)'는 단양과 제천, 음성, 괴산 등 충북 북부권에 위치한 농가 650곳에서 생산한 사과를 세척·선별·포장·출하하는 과실 전문 APC입니다. 생산단계부터 관리하고 사과 브랜드화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또 저온저장고와 선별기 등을 통해 비용을 줄여 농가엔 더 큰 수익을, 소비자들에겐 품질 좋은 사과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있습니다.

  • 25.12.1010:18
    고품질 韓 조사료 키워 사료비·수입의존도↓ ②
    고품질 韓 조사료 키워 사료비·수입의존도↓ ②

    59개 국가와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후 축산농가의 부담을 줄이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정부의 국내보완대책 가운데 하나가 '조사료생산기반확충 사업'이다. 조사료는 볏짚이나 목초 등 거친 섬유질 위주의 사료로, 이 사업을 통해 국산 조사료의 생산·유통·가공 기반을 갖춘 지역 단위 가공·유통센터가 확충되면서 국산 조사료 품질과 시장 신뢰도가 눈에 띄게 개선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북 김제에 위치한 전주김제

  • 25.12.0909:11
    "1인당 3500만원까지 받는다"…'직접 지원'한다는 FTA국내보완책①
    "1인당 3500만원까지 받는다"…'직접 지원'한다는 FTA국내보완책①

    올해 3분기 기준 한국은 22개의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를 통해 59개 국가와 FTA를 활용한 무역에 나서고 있다. 한국의 첫 FTA인 한-칠레 FTA가 발효된 2004년 4월 이후 약 21년 5개월 만의 성과다. 정부는 현재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85% 수준인 FTA 네트워크를 글로벌 1위인 90%까지 더 넓고 촘촘하게 확충할 방침이다. FTA 네트워크 확대에 따라 한국의 수출 시장이 넓어진 만큼 수출액도 2004년 2538억달러에서 2024년 6836

  • 25.12.0607:30
    한국인 참전자 사망 확인된 '국제의용군'…어떤 조직일까
    한국인 참전자 사망 확인된 '국제의용군'…어떤 조직일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이현우 기자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했다가 사망한 한국인의 장례식이 최근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열린 가운데, 우리 정부도 해당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매체 등에서 우크라이나 측 국제의용군에 참여한 한국인이 존재하고 사망자도 발생했다는 보도가 그간 이어져 왔지만, 정부가 이를 공식적으로 확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2.0309:48
    조응천 "국힘 이해 안 가, 민주당 분화 중"
    조응천 "국힘 이해 안 가, 민주당 분화 중"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조응천 전 국회의원(12월 1일) 소종섭 : 오늘은 조응천 전 국회의원 모시고 여러 가지 이슈에 대해서 솔직 토크 진행하겠습니다. 조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조응천 : 지금 기득권 양당들이 매일매일 벌이는 저 기행들을 보면 무척 힘들어요. 지켜보는 것

  • 25.11.2709:34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1월 24일)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한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는 호소력에 한계가 분명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연말 연초에 내부에서 장 대표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 전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