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로비 실체 논란, 당사자 모두 부인…자원외교 수사 '먹구름', 무리한 수사 비판도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검찰의 자원외교 수사에 ‘먹구름’이 깔렸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자살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그는 9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나와야 했지만 북한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검찰은 ‘돌발악재’가 터지면서 잔뜩 움츠린 상태다.
경남기업 수사는 사실상 끝이 났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임관혁)는 광물자원공사 등 남은 수사를 이어간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자원외교’ 수사의 상징과도 같았던 경남기업 사건이 마무리되면서 수사 동력은 크게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성 전 회장이 남긴 정계 로비 리스트는 새로운 논란의 불씨가 되고 있다. 경향신문은 성 전 회장이 죽음을 선택하기 전인 9일 새벽 그와 전화 인터뷰를 한 결과를 10일자로 보도했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2006년 9월 미화 10만달러를 건넸다는 주장이다. 또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때는 당시 박근혜 캠프 직능총괄본부장이었던 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7억원을 건넸다는 주장이다.
성 전 회장은 당초 ‘MB맨’으로 알려졌지만, 그는 공개적으로 이를 부인했다. 실제로 성 전 회장은 정치권 인사와 두루 친분을 쌓았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성 전 회장이 박근혜 대통령 전직 비서실장들에게 실제로 돈을 건넸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죽음을 앞둔 시점의 발언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둬야 한다는 관측도 있지만, 그의 주장 이외의 증거는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성 전 회장은 이미 숨진 상태이기 때문에 그의 주장을 입증할 방법도 없다. 허태열, 김기춘 등 전 비서실장들은 모두 “그런 일은 없었다”면서 성 전 회장 주장을 부인하고 나섰다.
검찰 관계자는 “검찰 수사과정에서 그러한 진술이나 자료 제출은 없었다. 향후 수사 여부는 법과 원칙대로 하겠다”고 밝혔다. 원론적인 얘기를 전한 것으로서 수사가 쉽지 않을 것이란 의미를 담고 있는 발언이다.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실체 여부가 관심을 모으는 이유는 검찰의 이번 수사를 둘러싼 논란 때문이다. 성 전 회장은 죽음을 선택하기 전날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은 ‘MB맨’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번 수사는 현 정부가 전임 정부를 겨냥한 ‘표적수사’라는 점을 지적한 셈이다.
성 전 회장은 유서에도 검찰 수사에 대한 억울함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성 전 회장 측근인 박준호 전 경남기업 상무는 9일 장례식장에서 기자들을 만나 “A4 용지 1장 분량의 유서에는 결백함을 주장하는 내용이 포함됐다”며 “검찰 수사의 부당함이나 강압성에 대한 내용은 없었고 최근의 상황과 검찰 수사가 억울하다는 정도였다”고 전했다.
유서에는 정계로비 대상자 명단 등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 전 회장 가족들은 유서를 공개하지 않을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의혹만 고스란히 남고 실체 확인은 되지 않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검찰의 자원외교 수사를 놓고 정부의 국면전환용 작품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이완구 국무총리가 부패와의 전쟁을 공언하고, 검찰이 전면에 나서면서 흐름을 주도했다. 하지만 ‘성완종 자살’이라는 돌발변수가 터지면서 검찰과 정부 모두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 검찰은 일단 원칙대로 수사하겠다는 뜻을 재확인했다.
검찰 관계자는 “광물자원공사 의혹들은 고인이 되신 분과 관련 없는 부분도 상당부분 있다. 자원개발 비리 수사는 국가재정이나 국민경제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국민적 관심사가 큰 사안이다. 그 부분은 흔들림 없이 수사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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