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민영 기자] 한국거래소와 증권업계가 손톱 밑 가시로 지적돼온 '파생상품 규제' 완화를 놓고 각을 세우고 있다. 증권사들이 "규제를 완화해 달라"고 토로하자 거래소 측에서는 "무턱대고 규제를 풀어줄 수는 없다"고 맞서고 있다.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대신증권, 대우증권 등 4개사 임원(상무급)이 거래소 파생상품시장 본부 임원과 만난 자리에서도 의견 차를 보였다. 이날 업계와 거래소 파생상품 책임자 회동은 최근 부진의 늪에 빠진 파생상품시장의 활성화 방안과 업계 건의사항을 공유하기 위해 마련됐다.
국내 파생상품시장은 아사 직전 위기에 몰렸다. 더 이상 추락할 곳도 없다. 거래소에 따르면 2011년까지 세계 파생상품시장에서 1위였던 한국은 지난해 11위로 추락했다. 기관별 투자자 거래동향(선물ㆍ옵션)을 살펴보더라도 개인투자자의 계약 건수는 2012년 422만2659건에서 2013년 204만1881건, 2014년 178만6309건으로 해마다 줄어드는 추세다.
증권사 임원들은 이날 회동에서 파생상품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의무교육을 대표적 발목 잡기 사례로 꼽았다. A증권사 임원은 "가뜩이나 시장이 어려운데 개인 파생상품 투자자에게 의무적으로 사전교육(80시간)을 받도록 한 규제 등이 거래 활성화를 막는다"며 "전반적인 정책 방향이 파생상품에 대한 개인투자자 접근을 막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6월 파생상품시장 발전방안으로 개인 파생상품 투자자에게 의무적으로 사전교육(80시간)을 받도록 했다.
B증권사 임원은 "일반 개인투자자의 진입 장벽을 높이고 전문가의 장으로 만들겠다는 얘긴데 이 규제 이후 전체 거래량뿐 아니라 개인투자자 비중도 줄었다"며 "활성화 방안인지, 억제 방안인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C증권사 임원은 "파생상품 투자상담을 받으러 왔다가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하면 '번거롭다'며 되돌아가는 고객도 있다"며 "이런 교육을 왜 하느냐"고 반문했다.
이 같은 업계 입장에 대해 거래소는 '규제' 완화만이 시장 활성화의 답은 아니라는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거래소 한 관계자는 의무 교육과 관련 "증권사들이 투자자 의무교육 때문에 투자자들이 해외시장으로 빠져나가는 풍선효과를 우려하지만 외국시장의 수수료가 더 비싸고 리스크도 더 크다"고 업계의 논리에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증권사의 파생상품시장을 활성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주일에 한 번 업계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면 해외영업 관계자는 규제 탓만 한다"며 "증권사도 리스크를 감수하고 시장을 살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일례로 증권사가 고유재산을 매매하는 자기매매 비중이 줄어들고 있지 않냐"고 반문했다. 지난해 코스피200선물의 전체 거래대금 중 증권사의 자기매매 비중이 2010년 대비 절반 이하로 추락한 것을 지적한 것이다.
하지만 업계 측 해석은 달랐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자기매매시장이 활성화되려면 기관이든 개인이든 경쟁이 돼야 이익이 날 텐데 지금처럼 시장이 죽어서는 이익이 날 게 없어 자기매매를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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