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한민국은 새로운 성장 동력에 목마르다. 구글, 애플과 같이 파괴적 기술로 부상하는 글로벌 기업이 있다. 샤오미, 알리바바 등 기술 추격과 선도를 병행하는 중국 기업의 등장에 대한민국만 뒤처지는 듯한 위기감이 각계에 팽배하다. 새로운 성장 동력에 대한 갈증이 심하다 보니 여론에서 연구개발계를 보는 시선이 곱지가 않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 투자 비중이 최고임에도 그 성과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타와 함께 국민이 체감할 정도의 연구개발 성과를 내놓으라는 주문이 거세다.
지난 10년간 정부가 투자한 연구개발비 총액이 140조원에 달했는데 왜 그로부터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부를만한 혁신이 보이지 않을까. 그 원인 중 가장 심각한 문제는 과거의 성공에서 비롯된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에 전화기의 대중화를 가능케 한 TDX 개발을 성공시켰고 1990년대에는 이동통신의 확산을 가져온 CDMA를 개발했다. 당시 기업의 연구개발 역량이 크지 않았기에 정부출연 연구소가 그러한 신기술을 개발하고 확산시키는 역할을 주도했다. 그렇다 보니 지금까지도 정부의 기술 정책은 차세대 신제품 개발에 중점을 두고 기술 사업화나 기술 창업을 장려한다. 최근에는 아예 연구개발 초기부터 사업화를 목표로 삼으라는 추세다. 빠르게 경제 개발을 하던 과거의 성공 방정식을 지금까지 가동하며 더욱 가속시키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의 성공 방정식이 통하지 않는다. 과거의 성장 동력이 선진국에서 이미 구현한 제품을 역추적하여 국산화함으로써 나왔다면 지금의 성장 동력은 기술이 고도로 집약된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의 창조로부터 나온다. 하나의 기술집약적 제품이나 서비스가 나오기까지는 대단히 복잡한 요소 기술 개발과 기술 간 통합 과정을 필요로 한다. 노트북을 뜯어보면 그 복잡한 과정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노트북은 다수의 부품으로 구성되는데 부품 하나하나를 관찰해 보면 부품마다 많은 요소 기술들이 통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분자 단위로 분해해 보자. 플라스틱, 실리콘 등이 우리가 사용하는 노트북의 화학적 기반이다. 즉 노트북 안에는 화학, 기계, 반도체, 설계, 디자인까지 다종의 기술이 결합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노트북은 인터넷, 소프트웨어 기술과도 결합하며 수많은 사용방식을 창조해낸다. 어디 노트북뿐일까. 스마트폰, 자동차, 아파트, 가전제품 또한 수많은 기술의 집약체다.
그렇다면 창조형 성장 동력을 누가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이를 오케스트라에 비유해 보자. 뛰어난 각종 악기의 연주자들, 웅장한 울림을 만들어낼 작곡가, 협주의 조화를 리드할 지휘자는 오케스트라의 핵심 인물이다. 관객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오케스트라를 지원하고 경영할 사람도 필요하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하모니가 최고에 달할 때 오케스트라의 성과는 관객에게 감동으로 전해진다. 기술집약적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각 기술 영역에서 뛰어난 연구자들, 새로운 제품 개념을 만들어내는 기술 비전가, 각 영역에 흩어진 기술을 통합해내는 실행가, 그리고 이를 지원할 후원자 또는 기업가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 조화가 혁신적 제품에서 구현될 때 소비자는 기술 개발의 성과를 체험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정부는 기술정책의 주안점을 복잡한 기술 개발 과정의 말단에 있는 신제품이 아니라 그러한 신제품을 기업들이 만들도록 공공 기술 생태계의 탁월성과 다양성을 조성하는데 두어야 한다. 연구자 홀로 신개념의 기술개발부터 사업화까지 이루어내기에는 성장 동력을 놓고 벌이는 국가 간, 기업 간 경쟁 환경이 녹록지 않다. 요컨대 국민이 체감할 정도의 연구개발 성과는 건강한 기술 생태계의 하모니가 만들어 내는 것이다.
홍성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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