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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억울해도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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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억울해도 할 수 없다 김소영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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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우사인 볼트는 2008년 베이징,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100m, 200m 금메달을 땄다. 2년마다 홀수해에 열리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도 2009년 베를린, 2013년 모스크바 대회에서 100m, 200m 금메달을 차지했다. 유일하게 2011년 우리나라에서 열린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100m 금메달을 놓치고 200m 금메달에 그쳤다. 사실 금메달을 놓친 게 아니라 부정출발로 실격당해 아예 경기를 못 뛰었는데 당시 화제가 된 부정출발 규정이 새삼 떠오르는 것은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박태환 선수의 도핑테스트 징계 문제 때문이다.


부정출발은 영어로 'false start'인데 영어 표현에는 '부정'이라는 도덕적 뉘앙스가 없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의든 실수든 그냥 제대로 출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출발 신호 전에 출발하는 것도 부정출발이지만 신호가 떨어진 후 특별한 이유 없이 늦게 출발하는 것도 부정출발이다.

부정출발과 밀접히 관련된 스포츠 종목이 육상과 수영인데 세계적인 상위급 대회일수록 부정출발을 엄격히 규정ㆍ감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는 지역ㆍ국가별 예선ㆍ결선을 거치고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결승전의 마지막 8개 레인에 서는 세계 최고 선수들이 출발선에서 겪는 신체적ㆍ정신적 긴장감은 심장마비 수준일 텐데 누가 부정출발을 했든 출발선에 다시 서야 하는 그 부담감으로 인해 선수 모두의 경기력이 저하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부정출발은 해당 선수가 퇴장 당하는 것만이 아니라 같은 자리에 선 전체 선수들에게 집단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세계 최고 기록의 산실인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아주 까다롭게 규정하는 것이다.


경쟁 수준이 낮은 육상대회에서는 심판이 눈으로 부정출발을 판단하는 경우가 많지만 국제급 대회에서는 출발선 스타팅 블록에 달린 센서에 나타난 반응 시간으로 판단한다. 출발 신호 후 0.1초 내 선수가 반응했을 경우 부정출발로 처리되는데 0.1초라는 숫자는 인간의 뇌가 출발 신호 소리를 듣고 그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시간적 한계에 대한 테스트를 근거로 도출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부정출발은 선수의 의도에 상관없이 컴퓨터 모니터에 나타난 객관적인 숫자가 증명하는 사실로 판정되는 것이다.

부정출발과 마찬가지로 도핑 판정과 징계 역시 의도가 아닌 사실만을 근거로 이루어진다. 이는 선수 당사자가 아닌 이상 마음속에 들어가 의도와 실수를 구별하기 어렵고 특히 엘리트 선수일수록 개인이 아니라 지원 스태프가 팀을 이루고 움직이는 복잡한 상황인 만큼 이들이 의도적으로 혹은 실수로 규정을 어겼는지 외부자가 정확히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판정자와 판정 대상자 사이에 일종의 '정보 비대칭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보의 비대칭성은 과학기술 연구개발 평가에서도 상당한 도전을 제기한다. 탈추격형 성장을 모토로, 선진국을 베끼고 따라잡는 것이 아닌 퍼스트무버 연구개발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얘기한 지도 10년이 훨씬 넘었다. 아직도 패러다임 전환이 요원한 것에 대해 많은 현장 연구자들은 무엇보다 창의적 연구와 와해적 기술혁신을 추동할 수 있는 연구평가 시스템의 부재를 지적한다.


문제는 평가자와 피평가자 사이에는 근원적인 정보의 비대칭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도전적으로 열심히 연구하다 실패한 경우와 불성실하게 실패한 경우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평가에 있어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피평가자가 솔직하게 불성실 실패를 인정하거나 평가자가 상당한 전문성을 지니고 연구의 도전성을 과학적으로 가려내야 할 텐데 스포츠계의 경험은 도덕이나 양심에 의존하는 전자의 해결책보다 사실에 의존하는 후자의 해결책이 더 효과적임을 암시한다.


김소영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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