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 A가 공직자 B에게 1억원을 건넸다고 하자. 이 금액은 현행 법체계상 형법이 규정한 '뇌물' 이거나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의 '금품'에 해당한다. 뇌물과 금품 간의 차이는 대가성 여부다.
변호사에게 벤츠 자동차를 받은 여검사의 경우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대법원 판결에서는 무죄로 확정됐다. 하지만 김영란법이 발효된 뒤 벤츠를 받는다면 대가성이 없어도 처벌 대상이 된다.
일부 기업이 왜 공직자에게 적지 않은 돈을 제공하려는 유혹에 빠질까? 뇌물 또는 금품 제공에 따른 비용보다 공직자에게서 받는 편익이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뇌물과 금품 수수는 부정부패를 조장함은 물론 자본주의 경제의 기본원리인 공정경쟁을 해치고 또한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킨다. 이를 적극 차단해야 하는 이유다. 따라서 '금품수수 행위를 지나치게 엄격히 다스리면 경제활동을 위축시킴으로써 경제 활성화에 역행한다'는 일각의 주장보다는 김영란법 제정 논리가 보다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뇌물을 준 A와 뇌물을 받은 B는 어떤 불이익이 있나. 형법에 의해 A는 뇌물공여죄로, B는 뇌물수뢰죄로 각각 처벌되고, 해당 금액은 물론 이에서 발생한 수익까지 몰수 대상이 된다. 세법도 엄하다. 뇌물재원(주로 비자금)은 비용으로 인정하지 않고 받은 자의 돈은 기타소득으로 과세한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뇌물방지협정 및 자금세탁방지 금융대책기구(FATF)의 권고에 따라 국내법이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김영란법상 금품수수에 대한 처벌은 뇌물보다 상대적으로 약하다. 뇌물과 금품의 차이를 크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일반국민의 시각은 그게 그것인데 말이다). 몰수나 세금추징 조항도 없다. 단지 1회에 100만원(1년 통산 300만원) 이상을 받을 경우 3년 이상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고, 그 이하라면 2~5배의 과태료 부과에 그친다.
더구나 김영란법을 꼼꼼히 살펴보면 금품 제공 기업에 대한 처벌조항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양벌 규정(제24조)이 있지만 빠져나갈 구멍이 크다. 그나마 강제조항이 아닌 임의규정에 불과하다. 금품수수 행위의 원천을 봉쇄하는 보완책이 요구된다.
세법도 거의 무방비 상태다. 금품의 재원은 대부분 접대비, 업무추진비, 광고선전비 등에서 나온다. 이들 항목은 원칙적으로 세법상 비용으로 인정받는다. 따라서 이 같은 돈을 많이 쓸수록 법인세를 덜 낸다. 상대적으로 금품을 제공하지 아니한 기업이 세금을 더 내는 꼴이다. 사리에 어긋나는 것는 물론 조세공평부담원칙에도 맞지 않는다. 비용공제가 되지 않도록 세법을 보완해야 한다.
아울러 공직자 B가 받은 금품은 기타소득으로 보아 전액 종합소득세 합산과세대상에 명확하게 포함되도록 세법을 개정해야 한다. 물론 현행 세법은 뇌물, 알선수재 및 배임수재에 대해서 기타소득으로 과세하고 있으나 여기에 김영란법의 금품이 포함되는지는 의문이다. 설사 증여세법으로 과세한다고 해도 1억원까지는 10%의 세율이 적용돼 실효성이 낮다.
소득세율 38%를 적용받는 공직자가 30만원의 골프 접대를 받았다면, 그에게 11만원의 세금 부담[30만원×소득세 최고세율 38%]이 되도록 세법 개정을 해야 한다. 이 경우 30만원에 대해서는 김영란법상 5배까지 과태료도 부과할 수 있어 최고 161만원[세금 11만원+과태료 150만원]의 부담을 안게 된다.
이처럼 주는 자와 받는 자 모두에게 엄중하게 세금을 부담시키면 김영란법이 더욱 실질적이고 효과적으로 작동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사족이지만 벤츠 여검사의 경우 형법상 무죄지만 벤츠는 세법상 증여세 과세 대상이다. 그가 증여세를 내는지 지켜볼 일이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 교수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