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장현 기자] "여기에 계신 분들 중 곧 망할 분들이 많습니다."(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말고 금융규제 개혁을 이끌어 달라."(임종룡 NH농협금융 회장)
지난 3일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서 열린 '2015 범금융 대토론회'는 내로라하는 국내 금융사 CEO들이 모인 만큼 무게 있는 말을 재치 있게 표현하는 수사학의 향연이기도 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오신 모든 분들이 한 말씀 씩 안 하면 퇴장 못하게 하겠다"며 뼈있는 농담을 건넸고 실제 참석자들의 발언이 길어져 토론회가 한 시간 가량 늦게 마무리될 만큼 열기가 뜨거워졌다. 지방에서 회의 참석차 상경한 일부 금융 CEO들은 회의가 예상보다 길어져 급히 기차표 예약을 변경하기도 했다. 윤창현 금융연구원장은 "성세환 BS금융지주 회장 복귀 기차 시간이 9시 반이라는데 시간 넘으면 장관이 호텔비를 줄지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황영기 금투협회장은 1부 세미나 토론에서 마이크를 잡자마자 "여기 곧 망할 분들이 많다. 누가 어떻게 망하느냐가 문제"라고 운을 떼 참석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는 "금융이 나아가야할 길은 디지털화다. 전자산업이 디지털화하면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했듯이 금융도 혁신해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해야 한다"고 말하며 핀테크라는 거센 파도를 앞둔 금융권의 고민을 보여줬다. 홍기택 산업은행 회장도 "빅데이터로 고객 분석이 가능한 포털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은행업을 내주게 될 수도 있다"며 "은행이 나중에 인수합병(M&A) 당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금융 보신주의의 한 원인으로 지적돼 온 과도한 감독관행에 대한 개선의 목소리는 '절절포'라는 단어로 압축됐다.
이날 오전 강원도 화천의 한 부대를 다녀온 임종룡 NH농협금융 회장은 "부대원들이 '절절포'라고 적혀 있는 머플러를 두르고 있어 물으니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말자'는 뜻이었다"며 "금융규제 개혁도 '절절포' 정신으로 이끌어 달라"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은 "금융사가 자유와 창의를 바탕으로 역동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감독당국도 노력하겠다"며 "'절절포'를 절절히 기억하겠다"고 화답했다. 진 금감원장은 "얼굴을 덮으면 발목이 나오고 발목을 덮으면 얼굴이 나오는 짧은 담요처럼 금융감독 방법도 장ㆍ단점이 있는 만큼 장점은 극대화시키고 단점은 대비책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그는 마른 우물에 빠진 노새가 떨어지는 흙을 발로 다져 우물을 탈출했다는 우화를 들며 "저성장의 덫에 걸렸다느니, 금융성이 저하됐다느니 하며 흙이 날라드는 상황에서 당국과 금융사가 이 위기를 기회로 살려서 희망의 빛을 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신 위원장은 기술금융ㆍ창조금융 등 정책 밀어붙이기의 일환으로 토론회를 개최했다는 일각의 비판을 의식한 듯 "여러분 중에 일부는 '또 뭐하는 짓인가'라는 얘기를 했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개인적인 바람이다. 저는 (토론회를 통해) 많이 배웠고 많은 것을 느꼈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국회나 금융권에서 가장 듣기 싫은 말이 '우리나라 금융은 우간다 수준'이라는 말"이라며 "당국과 금융사가 반성해서 다음 세대에는 대한민국이 '금융강국'이라는 평가를 듣기를 간절히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장현 기자 insid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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