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종에선 소화하기 어려운 제도"
[아시아경제 김은별 기자] 정부의 '시간선택제 일자리' 정책이 예상보다 저조한 실적을 보이고 있지만 해당 기업들도 마땅한 묘책이 없어 고민이다.
3일 고용노동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3년 고용박람회에 참여한 10개 주요 기업들이 시간선택제일자리 1만865명을 뽑겠다고 밝혔지만, 지난해 6월까지 고용인원은 6700명(61.7%)에 그쳤다.
기업들은 "제조업종에서 시행하는 시간선택제에서 많은 인력을 소화하기란 불가능하다"며 "제도 시행 전부터 우려했던 사실"이라고 입을 모았다.
삼성전자의 경우 당초 하드웨어(HW)와 소프트웨어(SW) 개발 분야에서 시간선택제 인력을 대부분 채용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해당 분야를 희망한 경력단절 여성 지원자들이 매우 적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선택제 고용의 질을 높이고, 기업도 전문 영역 역량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만들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지원자 자체가 없었다는 얘기다. 개발 분야는 과거 업무 경험이 없다면 지원이 어렵다.
시간선택제 구직에 성공한 B씨는 "삼성과 현대 등 대기업을 중심으로 일자리를 알아봤는데 대부분 영어, 전문지식 등을 필요로 하더라"며 "어렵게 입사한 인력 중에서도 교육을 버티지 못해 스스로 그만두는 경우도 많다"고 밝혔다.
출퇴근 거리ㆍ시간 등 물리적인 문제도 있다. 삼성의 경우 생산라인이 화성, 기흥, 천안 등에 자리잡고 있어 서울지역 경력단절여성이 몇 시간 근무를 위해 이동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현대차그룹 등 타 제조업체들도 마찬가지다.
시간선택제 취업을 포기했다는 C씨는 "전 직장이 제조업이라 이 분야에 다시 취업하고 싶었는데 어려울 것 같다"며 "대부분 서울에서 출근버스는 운영하고 있지만 (시간선택제를 위한) 퇴근버스는 없기 때문에 결국 월급을 교통비로 상당수 쓰게 된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결국 제조분야 기업들은 본래 취지대로 전문 인력을 뽑는 대신, 서비스직과 사무지원직을 뽑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판매ㆍ서비스(제품상담, 서비스 콜센터 등) ▲사무지원(일반사무, 사서, 어학강사 등) ▲개발지원(설계, CAD, 도면관리 등) ▲특수직무(간호사, 심리상담사, 물리치료사 등) 등에서 채용했고 LG그룹도 심리상담과 간호사, 컨설턴트 등의 분야에서 주로 채용했다.
임시방편으로 고용 규모는 늘렸지만, 제조업체들 입장에선 '의미없는 고용'이 됐다는 불만도 나온다. 업종, 업체에 따라 분석한 뒤 시간선택제를 도입해야 효율적으로 운영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한 제조업종 대기업 관계자는 "생산라인이 24시간 돌아가는데, 이 시스템을 건드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시간선택제를 모집하다 보니 구직자 입장에서는 애매한 시간대가 될 수 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렇다고 시간선택제 때문에 라인 가동 시간을 바꿀 수도 없는 노릇 아니냐"고 반문했다.
고용 전문가들은 정부가 나서서 직무 분석을 거치고,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적합한 일자리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한다. 전수봉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시간선택제를 확산시키기 위해 기업은 기존의 인력운용 틀에서 벗어나 열린 자세로 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정부는 컨설팅ㆍ인건비 지원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은별 기자 silversta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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