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는 몇 개의 숫자에 의해 정의될 수 있다. 인구 5000만, 1400여조원의 국내총생산액(2013년), 경제성장률 3%. 이런 통계들로 우리 사회의 초상이 어떤지, 또 어떻게 움직이는지 간단히 요약된다. 그러나 우리네 삶은 결코 숫자가 아니다. 사람들의 삶이란 숫자로는 결코 잡히지 않는 미세한 주름과 굴곡, 그 살과 피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든 정책이든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일에는 숫자 속의 사람들의 삶의 결에 대한 감수성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 감수성은 정치와 정책을 펴는 이들에게 있어 좋은 품성을 넘어 곧 역량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의 실제 삶에 대한 깊은 감수성과 이해가 있어야 사람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권력을 힘에 의한 폭력이 아닌 권능에 의한 진짜 권력이게 하는 힘이 거기서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담뱃값 인상에 대해 많은 이들이 과거 어느 때보다 거세게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그 반발과 불만은 가격 인상 폭이 사상 최대치라는 것에서 적잖게 비롯된 것이겠지만 내 주변의 많은 이들은 도대체 담뱃값을 올리면서 미안해하는 마음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더 화를 내고 있다. 몇몇 사람은 담뱃값 부담 때문에 아니라 이런 정부에 세금 보태주기 싫어서 담배를 끊겠다고 한다. 이런 '금연 심리'까지 감안했다면 정부의 담뱃값 인상은 대단히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담뱃값 인상을 결정하고 추진한 이들은 몇 개의 수치로 인상의 필요성과 효과를 제시했다.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이 인상의 진짜 이유였는지에 대해 많은 논란이 오가고 있는 상황이란 점, 또 국민의 건강에 대해 과연 얼마나 깊은 고민이 있는가, 하는 의심은 여기서 일단 거둔다 하더라도 나는 그들의 말에서 정치, 또 정부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것, 사람들의 삶에 대한 감수성의 결핍을 보게 된다. 그들에게선 담배에 의존하는 가련한 이들, 누군가에게는 혐오스러운 공해원이지만 자신의 몸을 희생하면서라도 초라하고 고단한 삶에 정신적 양식을 찾는 이들에 대한 연민이 없었다. 그 연민에서 비롯된 미안함이 없었다. 그래서 당당하기만 했고, 그 당당함으로 '훈계'를 하려고 했다.
담배가 해롭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담배만큼, 아니 담배보다 더 해로운 것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때로는 정부의 보건정책이야말로 국민의 정신보건에 해가 될 수 있는 듯하다.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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