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정체불명 브랜드, 가격도 허위 가능성 높아
-확인 않고 받아쓰는 매체들 기사 '찍어내기'에 잘못된 정보 확산
[아시아경제 온라인이슈팀] 배우 이정재와 임세령 대상그룹 상무의 열애설이 발표된 이후 특히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던 것은 임 상무가 입은 패션 아이템이었습니다.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로 휘감았다면서 "1회 풀착장이 서민 전셋값" "한 번 움직이면 억! 소리" 등 자극적인 문구 일색인 기사가 뉴스를 '도배'했는데,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이게 과연 진실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 가격표는 '조작'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단 화제가 됐던 인터넷 이미지를 하나하나 뜯어보겠습니다.
위 이미지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돌고 있는 것을 가져와 보기 쉽게 크기를 조정한 것입니다. 위 두 사진은 '스포츠서울닷컴', 아래 두 사진은 '디스패치'에서 보도했으며, 아래에 붙은 설명은 누리꾼들이 붙인 것입니다.
패션에 관심이 많은 분들은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셨을 겁니다. 에르메스 같은 유명한 이름이 있긴 한데, 처음 보는 이름들도 섞여 있습니다.
우선 '릴리 마들레디나'란 브랜드는 없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돌고 돌면서 '릴리 마들레니아'라고 표기한 게시물도 있는데, 이 역시 없는 이름입니다. 마놀로×힐피거, 골로친스키, 브라운토닉 모두 정체불명의 이름입니다. 유명브랜드를 조합하거나, 그럴싸하게 지어낸 이름입니다.
에크니시 울프릭이란 부츠는 있을까요. 검색해보니 역시 그런 브랜드는 없습니다. 다만 '울프릭 부츠'라는 '게임 아이템'은 있습니다.
'미놀로 블라닉'은 유명한 구두 브랜드 '마놀로 블라닉'을 잘못 쓴 것처럼 보입니다.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 주인공 캐리 브래드쇼(사라 제시카 파커)가 애용해 국내에도 널리 알려졌죠. 사진에 있는 게 진짜 마놀로 블라닉 구두라고 치고, 가격은 420만원이 과연 맞을까요.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바니스(Barneys)' 백화점에서 판매되는 마놀로 블라닉의 펌프스(pumps)류 구두의 소매 가격대를 살펴보니 저렴한 제품은 595~695달러, 비싼 제품은 1165~1395달러 정도입니다. 환산하면 최고 150~160만원입니다. 420만원까지는 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에르메스 핸드백도 마찬가지입니다. 크로커 레더 익조틱이란 제품은 없습니다. 비슷하게 생긴 모양의 제품은 실제 있습니다만 문제의 사진에는 악어가죽 특유의 무늬가 보이지 않고 세부 모양도 다릅니다.
버버리 본 보야지, 아마 영어 단어 '보이지(voyage)'를 어떻게 읽는 줄도 몰라 이렇게 쓴 것으로 추정됩니다. 사진에 나와 있는 갈색 코트는 버버리 제품이 아닙니다. 발렌티노의 2014년 Pre-Fall 콜렉션에서 선보인 코트로, 약 400만원대라고 합니다. 이 부분은 몇몇 언론매체에서도 기사로 다뤄졌는데, 전혀 엉뚱한 내용이 돌고 있습니다.
다만 이 패션 아이템들이 정말 국내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1% 상류층들만의 전유물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래서 국내 패션업계 전문가들에게 확인을 의뢰했습니다. 대표적 패션업체인 S인터내셔날과 J모직 관계자 두 명에게 물어보니 이런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임 상무 같은 속칭 '재벌가' 사람들은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패션 브랜드를 착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에 있는 패션 브랜드 명이 우리가 봐도 생소한 것은 맞다. 일단 에크니시 울프릭, 릴리 마들레디나 같은 브랜드는 없다."
한 중고 명품 거래업체 관계자도 해당 게시물에 언급된 브랜드 명에 대해서는 "생소하다"고 응답했습니다.
처음 이 사진이 돌았던 것은 이정재씨와 임 상무의 열애설이 보도된 1일 직후입니다. 몇몇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이런 반응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지난 주말 인터넷을 강타한 임 상무의 '명품도배 패션' 게시물은 진위 여부를 가리기 힘들다고 봐야 할 듯합니다. 비싼 명품일 수는 있겠지만, 저렇게 돌고 있는 브랜드와 가격표는 누군가 임의로 만들어냈을 가능성이 더 커 보입니다. 해당 게시물은 일부 브랜드 설명이 수정·추가되며 현재까지도 계속·인터넷에 전파되고 있습니다.
남다른 부를 소유한 재벌가 사람들이라면 보통 사람은 구하기 힘든 고가의 패션 아이템을 쓸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확인도 거치지 않은 채 "모두 합치면 몇 천만 원, 서민 전셋값에 맞먹는다"는 식의 선정적 보도가 확산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부끄럽지만 아시아경제에서도 지난주 임 상무의 패션 아이템을 주제로 두 건의 기사가 나갔습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내부적으로 문제 제기가 있었고, 검증을 위해 무분별하게 유포되는 이 내용을 철저히 살펴보는 과정에서 지금의 이 기사를 만들게 됐습니다.
앞으로 아시아경제는 더욱 사실에 입각한 기사를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아울러 국내 언론매체들도 무분별한 기사 '찍어내기'에 앞서 더 철저한 검증을 하는 기본에 충실해야 하겠습니다.
더불어 "재벌가 사모님이라면 당연히 수천만 원대 옷을 걸칠 만하다"고 수긍하고 마는 세태도 씁쓸하기만 합니다. 연이은 사회지도자층의 '갑질' 논란에 분노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스스로 어느새 계급화된 사회를 인정하고 있진 않은 걸까요.
온라인이슈팀 issu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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