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백종민 기자] 러시아의 금융위기에 국제 원유가 하락, 달러화 강세, 미국 경제의 성장, 독일과 일본의 침체, 브라질 등 신흥 개발국가의위기까지.
마치 현재의 세계 경제 상황을 요약한 듯 하지만 이는 90년대 말에 나타났던 현상들이다.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오는 20일자로 발간하는 최신호에서 '과거와 미래의 긴장'이라는 제목의 표지 기사에서 90년대 말에 봤던 이와 같은 현상들이 재현되고 있다며 내년 세계 경제 모습을 전망했다.
이 잡지의 표현대로 90년대 말과 지금의 상황은 유사한 점이 많다. 1999년 미국은 연간 경제 성장률이 4%로 다른 선진국의 2배에 이르렀다. 실업률도 4%로 30년 만에 최저 수준에 머무는 가운데 해외 투자가 유입되며 달러화와 주식 가격이 급등했다.
반면 일본은 1997년 경기 침체에 빠졌고, 독일은 경직된 노동시장 탓에 '유럽의 환자'로 꼽혔고, 태국과 브라질은 1997∼1999년 외환위기를 겪었다. 러시아는 디폴트(지급불능)이라는 혼란을 겪었다.
그때와는 달리 중국이 세계 경제 2위국으로 등장했지만 적어도 당시와 현재의 상황을 비교해보면 3가지 측면에서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는 게 이코노미스트의 판단이다.
우선 미국과 다른 나라들의 성장률 격차다. 내년 미국의 경제 성장률은 3% 수준으로 예상되지만 독일은 1% 수준, 일본은 내년에도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G2로 부상한 중국은 7%대 성장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미국도 원유 가격 하락으로 셰일 개발 기업들의 위기가 우려되고 달러화 강세로 수출업체들의 채산성 악화가 예고되고 있다.
독일은 수년간 투자가 줄어든 데다 엄격한 재정 지출 통제로 성장 동력을 잃고 있다는 평가다. 일본 역시 1997년처럼 소비세 인상으로 정체에서 벗어날 기회를 무산시킬 수 있다.
러시아뿐만 아니라 원유 수출 비중이 큰 나이지리아 등이 재정 위기를 겪을 것이란 우려도 씻지 못하고 있다. 가나는 이미 국제통화기금(IMF)에 지원을 요청했고 브라질 기업들도 달러화 부채로 파산 위기에 처했다는 점은 1990년대 말 아시아 국가들의 외환위기 상황을 연상케 한다.
90년대 말과 비교해 긍정적인 것은 상당수 대형 기술(IT) 기업이 양호한 실적을 내놓고 있어 주식 시장 변동성이 과거에 비해 덜하다는 점이 꼽혔다.
또 세계 금융 시장 시스템이 그때보다 견실해 감염 우려가 낮은 것도 긍정적 요인이다. 1998년 러시아의 디폴트로 유명 헤지펀드였던 롱텀 캐피탈이 무너지는 일이 발생했지만 지금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전망했다.
그러나 이코노미스트는 내년도 세계 경제가 비틀거린다면 뾰족한 경제 정책 수단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역사적인 초 저금리 상황에서 중앙은행들은 정책 수단을 잃고 있고 오히려 미국은 금리 인상 카드를 만지작대고 있다.
정치 상황이 좋지 않은 점도 우려할 대목이다. 내년도 경제 상황이 나아지지 않아 국민이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한다면 경제 불만은 분노로 바뀌어 각국의 정치판도가 바뀔 가능성은 커질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내다봤다.
백종민 기자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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