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빅시리즈#12. 요우커 몰려오니 상권도 변화
여행 전 인터넷으로 제품 검색…한국 브랜드 줄줄 외워
업계 해마다 매장수 늘려 현재 130곳서 영업
[아시아경제 김민영 기자, 김보경 기자, 주상돈 기자] 서울 명동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늘어나면서 이곳의 '상권' 지도가 바뀌고 있다. 명동 거리엔 중국어 간판이 즐비하고 중국어로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명동CGV 간판에도 중국어가 등장했다. 이처럼 이곳에선 간판에 한국어와 중국어를 병기해 놓는 것은 이제 새삼스러운 풍경이 아니다. 특히 요우커들의 필수 쇼핑 품목인 화장품 가게들이 한 집 건너마다 늘어서 성업중이다. 도심 속 차이나타운을 방불케 할 정도로 중국어 간판이 즐비한 명동 상권을 들여다봤다.
◆화장품 정보 줄줄 꾀는 요우커, 대리구매도 성행= "총 여행경비는 500만원으로 잡았는데 그중 쇼핑 예산이 320만원 정도예요. 한국 화장품이 진짜 좋더라고요. 되도록 많이 사갈 거예요."
지난달 26일 한국에 온 왕쥔(王郡ㆍ33ㆍ여)씨는 한국 화장품 애호가다. 후ㆍ네이처리퍼블릭ㆍ이니스프리 등 한국 화장품 브랜드를 줄줄 왼다. 또래 여성처럼 외모 가꾸기에 관심이 많다 보니 이번 여행에서 경비의 대부분을 쇼핑에 할애할 만큼 '화장품 쇼핑 여행'을 작심하고 왔다. 왕씨는 "한국하면 화장품이, 화장품하면 명동이 떠오른다"며 "면세점과 명동을 매일 들를 예정"이라고 했다. 왕씨처럼 화장품 매장을 찾는 중국인 중에는 제품정보에 훤한 사람들도 많다. 이들은 주로 드라마나 인터넷 검색을 통해 구매할 제품을 미리 점찍어 둔다.
아이오페 립스틱은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여자 주인공 전지현이 바르고 나오면서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 됐다. 제품을 캡처하거나 제품명을 메모해 가져오는 여성도 있고 '이니스프리의 화산송이 라인은 제주도에서 나지 않느냐'며 이 제품을 한 보따리 사가는 고객도 있었다고 한다.
중국 장시성(江西省)에서 왔다는 왕잉(王英ㆍ47ㆍ여)씨는 약 55만원을 주고 32명의 일행과 함께 단체관광을 왔는데 쇼핑에는 여행경비의 4배에 달하는 200만원을 쓸 예정이라고 했다. 왕씨는 "한국에 온다고 하니 지인들이 너도나도 화장품을 사달라고 부탁했다"며 "두 손 가득 들고 귀국해도 내 짐은 별로 없을 것"이라며 웃었다.
왕씨처럼 친구의 부탁을 받고 화장품을 대량 구매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중에는 장사꾼도 섞여 있다. 지난달 29일 동화면세점 앞에서 만난 중국인 남녀는 설화수, 후 등 고가 브랜드의 화장품이 가득 든 쇼핑백을 20여개 들고 있었다. 이들은 '500만원어치의 화장품을 선물용으로 구매했다'고 설명했지만 낌새가 장사치 같다는 것이 동행한 중국 통역의 설명이다. 최근 중국에 짝퉁 화장품이 등장하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화장품을 대리구매한 뒤 화장품 가격의 10%를 수수료로 챙기는 유학생들도 있다고 한다.
◆'화장품 공화국' 명동, 130여개 매장 성업 중= 이처럼 중국 관광객들에게 '한국 화장품'은 필수 쇼핑 품목이다. 지난 5월 대한상공회의소가 중국인과 일본인 관광객 각 150명을 대상으로 쇼핑실태를 조사한 결과 중국인들은 한국에서 화장품(86.7%)과 의류(61.3%)를 가장 많이 샀다.
이 때문에 명동에서 가장 눈에 많이 띄는 매장은 단연 화장품 가게다. 이곳에서 새롭게 뜨고 있다는 '유네스코거리'에는 한 집 건너 한 집이 화장품 가게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화장품 매장들이 촘촘히 자리하고 있다. 단일 브랜드로는 네이처리퍼블릭 매장이 10개에 이른다. 네이처리퍼블릭 매장은 2009년 2개, 2010년 5개, 2011년 6개에서 10개로 꾸준히 늘었다. 5년 새 점포 수를 5배나 늘린 셈이다. 최근에는 친환경 플래그십스토어(체험 판매장)를 유네스코거리에 냈다.
서진경 네이처리퍼블릭 팀장은 "명동은 국내 최대 유동인구를 자랑하는 동시에 최대 상권이자 관광특구다. 워낙 유동인구가 많다 보니 네이처리퍼블릭뿐 아니라 브랜드숍별로 다점포 전략을 운영한다"며 "2011년까지만 해도 일본인 관광객이 주고객이었지만 지금은 중국인 관광객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고 말했다.
다른 업체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아모레퍼시픽 역시 해마다 매장 수를 늘리고 있다. 명동에 있는 아리따움 매장 수는 2011년 4개였으나 2012년부터 6개로 늘려 운영하고 있다. 이니스프리의 경우 2011년 5개였다가 2012년 4개, 2013년 6개, 2014년 현재 8개가 영업 중이다. LG생활건강에서 만드는 더페이스샵은 2013년까지 쭉 5개의 점포를 유지하다가 올해 매장을 하나 더 늘렸다. 에이블씨엔씨는 미샤와 어퓨 각각 5개와 1개의 매장을 운영 중이다.
아예 한 가지 제품만 특화해 파는 가게도 성업 중이다. 마스크팩이 대표적이다. 지난 2월 명동에 오픈한 로열스킨은 현재 6개로 점포 수가 늘어났다. 중국인 관광객이 전체 손님 중 90%를 차지한다는 이 매장은 아이패치만 월 10만개가 나간다. 로열스킨 관계자는 "화장품 매출액 중 마스크 관련 제품이 30~40%를 차지하는데 명동 내 마스크팩&패치 전문매장을 낸 업체는 로열스킨이 유일하다"면서 "여타 화장품업체처럼 한류스타를 광고모델로 내세우지 않아도 제품에 대한 만족도와 구전효과 때문에 중국 손님들이 꾸준히 찾는다"고 말했다. 중국인들 사이에서 한국산 마스트팩이 워낙 인기다 보니 몇 백만 원어치를 사가는 고객은 물론 1000만원이 넘게 구매한 손님도 있었다고 이 관계자는 귀띔했다.
업계는 명동에만 어림잡아 130여개 화장품 매장이 현재 영업 중이라고 추산했다. 명동상권 내 화장품 매장 수는 2008년 21개, 2009년 35개, 2012년 80여개로 꾸준히 늘었다. 너무 다닥다닥 붙어 있어 장사가 될까 의심스러운데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화장품과 커피숍은 몰려 있을수록 집적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지하철 4호선 명동역 6번 출구에서 금강제화 매장이 있는 중앙로(명동8길)에만 20여개의 화장품 매장이 들어서 있다. 한 건물에 토니모리, 홀리카홀리카, 이니스프리가 나란히 입주해 있고 또 다른 빌딩에는 네이처리퍼블릭, 마몽드, 이니스프리, 더바디샵이 1m의 간격을 두고 다닥다닥 붙어 있는 식이다.
◆골목 상권도 들썩…터줏대감 상점은 문 닫아= 예전에는 명동역 6번 출구에서 명동예술극장으로 이어지는 300여m의 거리가 사람들로 가장 붐볐는데 현재는 롯데백화점 맞은편에서 명동예술극장까지의 유네스코거리에도 인파들이 몰리고 있다. 티니위니 매장 관계자는 "명동에 롯데백화점 명품관 애비뉴엘에 중국인 관광객 등이 많이 드나들면서 이 일대 유동인구가 많아졌다"며 "예전에는 중앙로가 주 상권이었다면 최근엔 유동인구가 곳곳으로 흩어지면서 골목 상권 하나하나가 뜨고 있다"고 말했다.
백화점ㆍ면세점 등으로 통하는 길목을 오가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늘어나면서 골목 곳곳에 상권이 형성되고 있다는 얘기다. 일례가 신세계백화점으로 이어지는 길(명동8나길)이다. 망고, 자라, 에잇세컨즈 등 제조유통일괄화(SPA) 브랜드가 몰려 있는 유네스코거리에 이어 이 일대도 SPA 브랜드 집결지가 되고 있다. 올 들어 이랜드 SPA인 스탭에 이어 캐나다 SPA 브랜드 조프레시가 새롭게 오픈했다. 인근에는 유니클로 명동점, 이랜드의 스파오 , 후아유도 들어서 있다.
화장품 등 매출을 견인하는 상점과 SPA 등 대형매장이 득세하면서 명동상권의 '역사'와 '낭만'이 사라졌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일명 '신사의 거리'로 불리는 이 일대는 에스콰이어를 비롯해 정장과 구두 브랜드숍이 많았다. 지금은 문 닫은 상점들이 많은데 2009년 명동상권의 터줏대감인 에스콰이어가 48년 만에 간판을 내리고 그 자리에 ABC마트가 들어섰다. 명동 보세 패션의 중심으로 여겨져 온 명동의류도 대세를 피할 수는 없었다. 30년 넘게 명맥을 이어온 명동의류가 문을 닫고 그 자리에 유니클로가 들어선 것이다.
명동상권이 부상하면서 숙박ㆍ음식업, 부동산 임대, 기타상품 전문 소매업 등에 종사하는 인력들도 늘고 있다. 서울 중구청에 따르면 이 일대에서 숙박ㆍ음식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2011년 8828명이었다가 2012년 9330명으로 늘었다. 부동산 임대업 종사자의 경우 2142명에서 2427명으로 280여명이 늘었다. 화장품 판매업자의 경우 기타 상품 전문 소매업에 포함되는데 2011년 1212명에서 2012년 1504명으로 종사자가 292명이 늘었다. 지난해와 올해 통계는 아직 나오지 않았는데 최근 요우커의 급증과 함께 이곳 상권에 변화가 큰 점을 감안하면 그 수는 기존 통계치보다 월등히 많아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일대의 임대료도 들썩이고 있다.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업체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가 공개한 '2014 세계의 주요 번화가' 보고서에 따르면 명동의 평균 임대료는 ㎡당 연평균 7942유로(약 88만2288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9위였던 명동의 평균 임대료 대비 1년 만에 17.6% 상승한 수치다. 명동신세계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명동의 경우 기존 매장들이 화장품 매장으로 바뀌면서 임대료가 올라가고 있다"며 "보증금 10억~20억원에 4000만원 하던 월 임대료가 1억2000만원까지 오른 곳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화장품 업체들이 요우커 급증으로 마진률이 높다 보니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고서라도 매장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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