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100세시대, 남자가 사는법(34)] 반려동물과 남자

시계아이콘02분 29초 소요
언어변환 숏뉴스
숏 뉴스 AI 요약 기술은 핵심만 전달합니다. 전체 내용의 이해를 위해 기사 본문을 확인해주세요.

불러오는 중...

닫기

[아시아경제 최창환 대기자]"뉴질랜드에서는 아이, 여자, 애완동물, 남자 순으로 물에서 구한다네요." 동료기자가 함께 차를 타고 가다 해준 얘기다. "허! 동물들은 수영을 잘하는데 왜 그럴까. 사람부터 구하는 게 합리적인데." 서양 사람들이 반려동물에게 전 재산을 상속했다는 뉴스를 심심찮게 본 터라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긴 우리도 남자 값이 바닥에 떨어졌으니까.


 "누가 창문 열어놨어?" 깜작 놀란 A가 뛰어오면서 소리친다. 반려견이 고층 아파트의 거실 창가에서 목을 내밀고 아래를 보고 있다. 안전창이 열려 있다. 다행히 사고는 없었다. 뭘 모르고 안전창을 열어뒀던 나도, 집들이에 초대한 손님에게 소리친 주인도 잠시 머쓱했다.

 골드미스 A는 반려견을 "우리 애" "우리 딸"로 부른다. 닥스훈트 장모종인 딸을 위한 배려가 집안 곳곳에 배어 있다. A는 병약한 딸을 수발하는 엄마 이상으로 녀석을 보살핀다. 다리가 짧은 녀석이 스스로 엄마 침대에 오를 수 있도록 침대 옆에 계단을 만들어줬다. 딸내미 나이는 14살이다. 사람 나이로 치면 100세에 육박한다. 햇빛을 즐기며 바깥구경을 하라고 창가에 별도의 침실도 준비했다. 나가고 싶어 쇠문을 긁다가 발톱이 다칠까봐 문과 거실 사이에 격리문도 만들었다.


 B는 비혼 여성이다. 결혼을 아직 안 한 미혼이 아니다. 결혼을 하지 않는 삶을 선택했다. 씨를 구해 아이는 가질 생각이다. 의료생협 활동을 하는 B는 의료보험의 가족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려동물도 가족에 포함시켜 보험적용을 해야 한단다. 제도가 바뀌기 전이라도 의료생협 활동을 반려동물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회의적인 시선에는 시간이 문제지 그렇게 가야 하고, 결국 간다고 자신한다.

 그녀들의 애들은 그녀들의 침대에서 함께 자는 사랑스러운 가족이다. 걔들은 그런데 남자들은 어떤가? 반려동물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은 좋다. 그런데 반려동물과 비교당하는 중년남자들의 꼴은 말이 아니다. 흔히 하는 농담으로 중년남성들은 이사를 갈 때 강아지를 꼭 껴안고 있어야 한다고 한다. 놓고 가려해도 강아지 때문에 할 수 없이 함께 데려간다는 얘기다.


 농담만이 아니다. 많은 경우 현실이다. 양희은과 강석우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여성시대'. 목요일에는 '남성시대' 코너가 있다.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담아내던 여성시대에 이제는 남성시대가 들어갔다. 남자들 힘이 빠졌다는 증거다. 거기서 나온 얘기다. 요즘 부인들은 남편에게 "우리 애(반려동물) 밥 잘 챙겨 먹이고 산책 잘 시켜"라고 당부하며 여행을 떠난다. 젊었을 때는 미안해 하면서 국과 밑반찬을 미리 준비하던 그녀들인데.


 그러다가 남자가 애완동물을 좋아하는 이유와 애완동물과 비슷한 면을 얘기한다. 남자는 규칙을 좋아한다. 매일 같은 시간에 먹이를 주고 산책을 하는 게 체질에 맞는다. 남자는 영역표시를 하고 충성을 좋아한다. 애완동물은 남자에게 충성을 다하는 존재다. 열심히 하면 애완동물처럼 사랑을 받아 순위가 올라간다는 얘긴지 뭔지. 불만스러운 생각도 떠오른다. 나도 남자니까.


 순위가 뒤로 밀린 건 분명하다. 가장(家長)의 의미가 달라졌다. 가족을 통솔하고 대표하는 사람에서 집안에서 '가장' 순위가 밀리는 사람으로 추락했다. 다는 아니지만 보편적으로 그렇다. 반찬도 아이들 우선이고 반려동물을 먼저 챙긴다. 아무리 힘이 빠졌어도 '남편'이고 '아버지'인데. 존중받지 못하고 희화화되는 풍토다.


 맑은 눈망울로 다가와 꼬리를 흔들며 내 무릎에 얼굴을 기댄다. 지금은 저세상으로 간 시추 순돌이가 그랬다. 그럴 때는 피곤이 풀리고 걱정이 사라진다. 큰 위안이 됐다. 사람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얘기 나눌 사람조차 없을 때가 있다.(제프 스완 '민들레 목걸이'에서) 그럴 때 반려동물은 따듯한 반려자다. 말은 없지만 다 안다는 듯이 바라보며 따뜻한 체온을 나눠주는 순돌이가 고마웠다.


 반려동물은 위안과 행복을 준다. 배신하지 않는다. 상처주지 않는다. 옆에 있어 주고 믿을 수 있기만 해도 큰 힘이 된다. 그래서 반려동물 같은 친구가 있었으면, 나도 이런 친구가 됐으면 한다. 힘들다. 곰이나 호랑이가 아니라 사람에게서 상처받는다. 내가 상처를 주기도 한다. 멧돼지, 벌에게 상처받으면 온 세상이 난리다. 드문 일이다. 대부분의 아픈 상처는 사람 때문에 생긴다. 서로 엮여 살고 기대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가족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남자도 지친다. 자존심에 상처받는 게 숫컷에게는 가장 큰 상처다. 생각해 본다. 권한이 없는 곳에 책임도 의무도 없다. 책임지지 않으려는 초식남이 늘어나고 의무만 걸머진 중년남성들이 황혼이혼을 선택하는 이유다. 물론 여자들도 힘들다. 슈퍼우먼 신드롬이 있다. 가사와 육아, 직업을 병행해야 하는 여성들의 어려움도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AD

 남자와 여자가 함께 힘들다. 드러나는 현상은 다르지만 이유는 똑같다. 세상이 달라지고 남자와 여자에 바라는 역할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과도기다. 전통적인 역할에 새로운 역할을 추가로 요구한다. 기사도 정신은 기사일 때 가능하다. 중세기사들은 십자군 원정 때 정조대를 채우고 전쟁터에 갔다. 그러자는 얘기가 아니라 그랬다는 얘기다. 새로운 역할 모델과 역할 분담이 필요하단 말이다.


기사 흉내라도 내려면 존중받아야 한다. 깔보이면서 기사도 정신을 강요받으면 "어, 이게 아닌데"라고 의문을 품게 된다. 아빠들은 아빠라는 이유로, 남편이란 이유만으로도 무시당하지 않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 정말 부탁이다. 더 이상 개와 줄 세우지 말아 달라. 농담으로 말하다 진실이 된다.  




세종=최창환 대기자 choiasia@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12.0209:29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병원 다니는 아빠 때문에 아이들이 맛있는 걸 못 먹어서…." 지난달 14일 한 사기 피해자 커뮤니티에 올라 온 글이다. 글 게시자는 4000만원 넘는 돈을 부업 사기로 잃었다고 하소연했다. 숨어 있던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나타나 함께 울분을 토했다. "집을 부동산에 내놨어요." "삶의 여유를 위해 시도한 건데." 지난달부터 만난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아이 학원비에 보태고자, 부족한 월급을 메우고자

  • 25.12.0206:30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를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 보려고 한다. 전문가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확산하는 부업 사기를 두고 플랫폼들이 사회적 책임을 갖고 게시물에 사기 위험을 경고하는 문구를 추가

  • 25.12.0112:44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법 허점 악용한 범죄 점점 늘어"팀 미션 사기 등 부업 사기는 투자·일반 사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구제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업 사기도 명확히 전기통신금융사기(보이스피싱)의 한 유형이고 피해자는 구제 대상에 포함되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합니다."(올해 11월6일 오OO씨의 국민동의 청원 내용) 보이스피싱 방지 및 피해 복구를 위해 마련된 법이 정작 부업 사기 등 온라인 사기에는 속수무책인 상황이 반복되

  • 25.12.0112:44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나날이 진화하는 범죄, 미진한 경찰 수사에 피해자들 선택권 사라져 조모씨(33·여)는 지난 5월6일 여행사 부업 사기로 2100만원을 잃었다. 사기를 신

  • 25.12.0111:55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기자가 직접 문의해보니"안녕하세요, 부업에 관심 있나요?" 지난달 28일 본지 기자의 카카오톡으로 한 연락이 왔다.기자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1.2709:34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1월 24일)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한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는 호소력에 한계가 분명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연말 연초에 내부에서 장 대표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 전

  • 25.11.1809:52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지난 7월 내란특검팀에 의해 재구속된 윤석열 전 대통령은 한동안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특검의 구인 시도에도 강하게 버티며 16차례 정도 출석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의 태도가 변한 것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이 증인으로 나온 지난달 30일 이후이다. 윤 전 대통령은 법정에 나와 직접

  • 25.11.0614:16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1월 5일) 소종섭 : 이 얘기부터 좀 해볼까요? 윤석열 전 대통령 얘기, 최근 계속해서 보도가 좀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군의 날 행사 마치고 나서 장군들과 관저에서 폭탄주를 돌렸다, 그 과정에서 또 여러 가지 얘기를 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강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