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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박원순의 전화 한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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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지난해 7월15일 서울 노량진동 상수도관 공사장에 갑자기 한강물이 유입돼 7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세월호 참사처럼 철저한 인재(人災)였다.


이 사고가 일어났을 때 많은 시 공무원들은 "또 한동안 시끄럽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동안 비슷한 사고가 일어났을 때 유족들과 보상 협상이 신속하게 마무리된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리 저리 책임을 피하면서 어떻게든 보상을 적게 주려는 시공사들 때문에 유족과의 협상은 늘 지지부진했다. 유족들이 관리 감독 책임이 있는 시청의 청사 앞에 고인의 영정 사진을 들고 시위하는 일도 잦았다고 한다.

하지만 뜻밖에 이 사고의 보상 협상은 사고 발생 5일 만에 전격 타결됐다. 실마리가 된 것은 서울시장의 전화 한 통이었다. 시장은 사고 발생 3일 뒤 복지건강실에 직접 전화를 걸어 시공사-유족간 보상 협상을 지원하라고 지시했다. '관례'에 익숙한 공무원들에겐 뜻밖의 조치였다. 관례대로라면 공사 발주처이자 주무 부서인 상수도 사업본부가 유족-시공사간 협상 지원을 맡게 돼 있었지만 이를 깬 것이다. 서울시장은 업무 특성상 수혜-지원에 익숙한 복지건강실 쪽이 정중해야 할 유족과의 협상 중재에 낫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또 사망자 중 중국 동포에 대해선 장례를 치루기 위해 입국하는 유족들을 공항에 직접 나가 극진히 맞이하도록 했다. 그래도 협상이 잘 풀리지 않자 당시 정무부시장과 정무수석 등 '힘 있는' 최측근을 총동원했다. 결국 정중한 예우와 발빠른 대처에 감동한 유족들은 협상안에 닷새 만에 도장을 찍었다. 서울시장의 '전화 한 통'은 민간인의 상식으로 보면 평범한 듯 보이지만 관료제의 타성에 익숙한 공직 사회를 일깨운 '파격'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1년도 더 지난 이 사건을 다시 되돌아 본 것은 요즘 상황이 답답해서다. 세월호 참사의 수습에 어떻게 임해야 할지 교훈을 던져주는 얘기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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