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째 공회전을 거듭하던 국가재난안전통신망 사업이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출구를 찾았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를 계기로 추진돼 온 국가재난안전통신망 사업은 정부 부처의 이기주의와 특정 업체의 독과점 문제로 십 년 넘게 제자리걸음만 걸어왔다. 이에 얼마 전, 정부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이번 7월까지 기술검증을 완료하고 내년에는 시범사업을 추진해 2017년까지 서울과 경기 그리고 5대 광역시에 국가재난안전통신망 구축사업을 완료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국가재난안전통신망 사업은 재난 상황에서 소방ㆍ경찰ㆍ지방자치단체 등 재난 대응기관이 일사불란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별도의 통신망을 구축하는 사업으로, 지난 3일 미래창조과학부는 국가재난안전통신망 기술방식 선정을 위한 자료의뢰서(RFI) 접수를 마무리 지었다.
이에 대해 통신업계는 국가재난안전통신망 기술 후보로 롱텀에볼루션(LTE)이 유력하게 부상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LTE는 우리나라에서 이미 상용화된 기술인 만큼 적용과 개발이 용이하고 다자간 무전통화뿐만 아니라 영상전송과 위치확인 등 최신 기술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재난상황의 영상과 피해자의 위치정보, 멀티미디어 메시지 등을 송수신할 수 있어 현장의 정보를 입체적으로 전파하고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해외 사례를 보더라도 LTE가 국가재난안전통신망에 가장 적합한 기술이라는 점이 명확하다. 미국의 경우, 2011년 광대역 재난안전통신망 기술로 LTE를 선정했으며, 광대역 재난안전통신용 주파수 사용권한을 FirstNet(퍼스트넷)에 주고 전국적으로 PS-LTE(Public Safety LTE)망 구축을 추진 중이다. 영국도 LTE 자가망 형태의 응급서비스망(ESN) 구축을 검토해 2016년부터 확대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가 인정하는 LTE 강국으로서 이동통신과 재난통신 분야에서 경쟁력을 가진 중소업체들이 무수히 많다. 또한 유무선 인프라를 비롯해 모든 통신망이 파괴됐을 때, 위성망을 백업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가지고 있어 국가재난안전통신망 구축에 필요한 모든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국가재난안전통신망 구축에 앞서 선결돼야 하는 과제는 바로 중앙 및 현장에서의 통합지휘체계의 구축이라고 볼 수 있다. 재난 사고가 발생할 경우, 소방, 경찰, 군 등 국가기관은 물론이고, 병원과 자원봉사자 등 민간기관의 일사불란한 협업을 통해 다양한 기관의 인적ㆍ물적 자원을 효과적으로 조직화해 능동적으로 상황에 대처하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번 세월호 사고를 통해 우리 정부 당국의 상황대처 역량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려면 다양한 재난 시나리오를 만들고 참여 대상 기관과 그 기관들의 업무와 역할을 명확히 정의하는 표준운영절차, 즉 SOP(Standard Operating Procedure)를 반드시 수립해야 한다. 그리고 이 표준운영절차에 근거해 유사시에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중앙통합지휘본부와 현장통합지휘소를 설립ㆍ운영해야 한다.
통합지휘체계는 기존의 관 중심에서 벗어나 학계(연구기관 포함), 민간기업, 자원봉사자 등 관련 분야의 전문가 집단이 모두 참여해 국가의 모든 자원을 총동원할 수 있는 재난대응 플랫폼 형태로 구성돼야 할 것이다. 이렇게만 되면 효율적 자원관리와 능동적 상황 대응으로 비용은 최적화하고, 효용성은 극대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각 기관, 단체, 개인 간의 상생ㆍ협력을 통해 우리의 재난대응기술을 선진화할 수 있는 '창조경제형 재난대응 시스템'을 구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통신기술은 수단일 뿐 목적이 될 수 없다. 따라서 현재 물리적인 통신 네트워크 중심으로만 논의되고 있는 국가재난안전통신망 사업을 표준운영절차 기반의 통합지휘체계를 포함하는 '통합지휘 통신체계 구축사업'으로 범위를 확장해야 한다. 그리고 그 속에는 대한민국의 모든 역량을 집중시켜 창조경제의 이름으로 다시 한 번 우리가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배성훈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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