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검찰이 벌금 500만원에 약식기소 한 정문헌 의원 정식재판 회부하기로 결정
[아시아경제 이혜영 기자] 사회적 파장이 컸던 사건을 약식기소하며 수사를 마무리한 검찰이 법원의 정식재판 회부 결정으로 체면을 구기게 됐다. 정치인이 연루된 사건에 약식기소 처분이 잇따르면서 검찰의 '봐주기·부실 수사'에 대한 비판이 나오자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7단독 이상용 판사는 17일 2009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누설한 혐의(공공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로 벌금 500만원에 약식기소된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을 정식 재판에 회부했다.
이 판사는 "공판절차에 의한 신중한 심리가 필요하다고 인정돼 약식명령을 하는 것이 부적당하다"고 설명했다.
약식기소는 유죄가 인정되지만 재판에 넘길 만큼 중하지 않다고 판단될 경우 검찰이 벌금형 등을 법원에 청구하는 것이다. 정국을 뒤흔들었던 대화록 유출 사건을 '벌금 500만원'에 해당하는 비교적 경미한 사안으로 다룬 검찰의 잣대는 결국 정식 재판을 통해 판단을 받게 됐다.
정 의원은 지난 대선을 앞두고 2급 국가기밀로 분류되는 대화록 내용을 언급하며 정국을 '북방한계선(NLL) 논란'에 휩싸이게 한 장본인이다. 당시 정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해 NLL을 포기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의 고발로 검찰은 수사에 착수했고 지난 9일 청와대 통일비서관으로 근무하면서 열람한 대화록 내용 일부를 2012년 10월 당시 각각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회 총괄본부장과 상황실장을 맡고 있던 김무성 의원과 권영세 주중대사에게 누설한 혐의로 정 의원을 약식기소했다.
김 의원과 권 대사, 서상기 의원(68) 및 남재준 전 국가정보원장(70) 등은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그러나 정 의원이 김 의원과 권 대사에게 대화록 내용 일부를 전달한 구체적 경위 등은 밝혀내지 못한 채 수사를 마무리한 점, 야당 의원 등이 연루된 비슷한 사건과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점 때문에 '눈치보기 수사'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또 정상회담 내용을 선거에 활용해도 가벼운 처벌에 그친다는 선례를 남긴다는 점에서 약식기소 처분이 합당한가를 놓고 논란이 이어졌다.
한편 법원은 국정원 심리전단 소속 여직원을 감금한 혐의로 벌금 200만~500만원에 약식기소된 강기정·이종걸·문병호·김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도 정식재판에 회부하기로 했다.
이 판사는 "피고인들이 무죄를 주장하고 있어 정식 공판절차에 의한 심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혜영 기자 itsm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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