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영신 기자]거리에서 우연히 지인을 만났다. 어떻게 지내는 지 안부를 묻자, 투덜거렸다. 왜 투덜거리는지 묻자, 초청한 외국 손님이 애를 먹인단다. "어떻게"라고 다시 묻자, 그런 일이 있다며 자세한 언급을 피했다.
"그럼 투덜거리지 말지, 왜 투덜거려"라고 슬쩍 핀잔을 주자, 못이기는 척 하면서 속 사정을 털어놓았다. 기자의 지인은 이벤트 대행업을 하고 있다.
그는 국내 행사에 초청된 해외 손님 한 명과 일주일째 씨름중이다. 그는 해외 초청 손님의 경우 통상 항공권과 호텔 숙박권을 예우차원에서 무상 제공한다고 했다. 문제는 초청 손님이 일정 등을 이유로 항공 일정을 재조정해 줄 것을 요청하면서 생겼다.
지인은 그가 원하는 일정에 맞게 다시 일정을 수정, 항공기 탑승 일정을 보냈다.
그러자 다시 이렇다 할 이유 없이 지인이 준비한 일정을 소화할 수 없다고 이메일 서신을 보내왔다.
지인은 혹 손님에게 무슨 말 못할 사정이 있는지 걱정이 돼 조심스럽게 다시 일정을 조율할 수 있다고 답장을 보냈다. 그러자 "미국 국적 항공사의 항공기를 타고 싶다"는 답이 돌아왔다.
지인은 미국 현지의 연결편과 한국 도착 시간 등을 감안, 한국 국적 항공사의 항공기가 훨씬 더 편한 항공여행을 제공할 것이라는 답을 다시 보냈다. 그러자 초청 손님은 항공료를 직접 부담할 뜻이 있다며 재차 미국 국적 항공사를 이용하겠다는 뜻을 굳히지 않았다.
그제야 지인은 초청 손님이 왜 그러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빈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세월호'.
사고 원인도 그렇고, 사고 후 어린 승객을 버린 선장과 선원들, 골든타임을 놓친 구조대, 우왕좌왕하는 정부 등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의 치부와 후진성을 그대로 드러낸 사고가 아니던가.
외신을 통해 세월호 참사 소식을 접한 초청 손님은 한국 국적 항공사의 항공기를 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한국의 '탈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지인은 "정확한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았지만 눈치가 그런 것 같아 해외 초청 손님이 원하는 대로 미국 국적의 항공사 항공기로 일정을 잡아 일을 끝낼 수 있었다"고 했다.
지인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만약 후진국인 ○○○○○의 한 기업이 나를 초청한 후 해당 국적항공사의 항공편을 제공하겠다고 하면 나라도 이용하고 싶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지인은 또 세월호 참사가 해외에 어떻게 비쳐졌는지, 해외에서 한국을 어떻게 보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지인은 기자에게 "세월호가 대한민국의 국가 브랜드는 물론 대한민국 국민과 국적항공사의 얼굴에 똥칠을 했다"고 또다시 투덜거렸다.
지인과 헤어진 후에도 '세월호'와 '똥칠'이라는 단어가 기자의 머릿속에 한참 동안 맴돌았다.
조영신 기자 asc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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