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이라도 살아야지. 죽은 자를 생각하며 애닯게 우는 유족에게 우린 이렇게 매정해보이는 위로를 한다. 통과의례(ritual of passage)는 그것을 집행하는 자와 그 주변의 인식을 포맷하는 이벤트라고 배웠다. 결혼식은 결혼을 한 사실을 주위에 공표하고 과시함으로써 그 결혼 당사자의 삶의 형식이 바뀌었음을 자신과 타인에게 각인시키는 행사이다. 장례(葬禮)는 죽은 자가 마침내 죽었음을 유족과 그 주변의 사람들이 인식하는 절차이기도 하다. 상가(喪家)의 통곡은 이제 막 이 세상을 떠난 사람을 다시 볼 수 없음을 떠올리는데서 생겨나는 진정어린 슬픔이지만, 그것은 또한 죽은 사람과의 이별을 뚜렷이 하는 각인(刻印)의 행동이기도 하다. 장례가 슬프면 슬플수록, 죽은 자와의 이별은 확실해지며 그 이벤트가 장중하면 할수록 고인은 확실하게 죽은 사람으로 자리매김한다. 요컨대 인간이 죽은 자를 위해 벌이는 행사는, 몸이 죽었다는 사실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켜서, 마음 속에 들어있던 그의 ‘생전의 관계’들까지 모두 매장하고 돌아서려는, 살아있는 인간의 현실적인 노력이라 할 만하다. 왜 인간은 이토록 죽은 자와의 정신적 이별에 공을 들일까? 사람이 죽기만 하면 왜 서둘러 장례를 지내고 부랴부랴 떠나보내는 것일까. 몸이 부패하기 전에 마음을 정리해야 한다는 강박이 작동하는 것일까. 죽은 자를 떼어내는 일은, 삶을 유지하는데 필수불가결하기 때문일까.
‘산 사람이라도 살아야지’라는 말은, 죽은 자에 대한 슬픔 때문에 산 사람이 죽게 생겼다는 과장법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죽음과 삶의 편을 가름으로써, 네가 더 이상 저 죽은 자의 편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설득을 하고 있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슬픔으로 울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죽음을 위로하기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내놓을 만큼 슬프지는 않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슬픔은 초상집 문턱까지만 넘어갔다 올 뿐, 진짜 죽은 자에게로 다가가려는 건 아니다. ‘산 사람이라도 살아야지’라는 말 속에는, 한 존재가 죽었다고 세상이 종결되거나 삶의 양상들이 끝장나는 게 아니라는, 엄숙한 진실이 숨어 있다. 누군가 죽더라도 삶은 계속된다. 초상집에 앉아있으면 세상의 일들이 자잘해보이고 들끓던 욕심들이 부질없어 보이는 까닭은, 삶의 뒷면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비로소 삶의 뒷면 부근에서 삶의 앞면을 바라보고 때문이다. 상가에서 우리는 자신의 죽음을 흘깃 보고 온다. 유심히 보는 건 아니다. 거기 얼마 전 숨을 거둔 시신이 있고 그것과 겹쳐져 보이는 자신의 주검이 있지만, 우린 그걸 정면으로 보지 못하고 외면한다. 죽음은 우리에게 영원한 금기이며, 목숨을 걸고 물리쳐야 하는 일생일대의 숙적(宿敵)이다. 죽은 사람은 죽었더라도 산 사람은 살아야지. 그렇게 말함으로써 우린 드디어 죽은 자를 물리치고, 산 사람들끼리 어깨를 부축하고 살아있는 세상으로 무사히 복귀한다.
옛사람들은 왜 3년, 5년이나 죽은 사람과 동거했을까. 죽은 자의 권력이 지금보다 더 셌던 까닭일까. 죽음의 권위가 지금보다 더 높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당시의 핵심 이데올로기인 효(孝)의 논리가 그들에게 이런 길고 괴로운 ‘사별(死別)’의식을 만들어냈을까. 산 자가 죽은 자와 지냈던 3년이나 5년은, 그렇다면 정말 인생을 낭비하는 허송세월이 아니었을까. 예를 들면 어린 시절 온 집안 사람들이 차례로 죽어가는 바람에 젊은 시절 내내 상복을 입고 지냈던 추사 김정희같은 사람은, 죽음을 과잉접대하느라 삶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이 점에 대해 생각해본다. 죽음과 동거하는 삶은, 죽음에 사로잡혀 슬픔으로 육신과 정신을 축내는 삶 만은 아니다. 그것은 삶의 이면(裏面)을 냉철하게 깨닫고 존재의 문제의 핵심을 들여다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죽음을 만나는 일이야 말로, 옛사람들이 삶에 대해 성찰하는 공부법이었을 수도 있다. 갈 수록 철학이 사라지고 생각들이 부박해지는 세태를 보노라면, 죽음과 동거하는 삶들이 발견한 깊이있는 지혜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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