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봐서 애지중지 키워온 딸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킨 친구가 자못 감격한 어조로 엊그제 입학식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는 걸 들으면서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한 아름씩 '선물', 그러니까 연필이며 공책이며 필통을 나눠 주더라는 것이다. 그 친구로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지만 그러잖아도 학교에 들어간다는 설렘으로 들떠 있던 아이는 더욱 신이 났다고 한다. 평소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하던 아이가 학교에서 받아든 필통이며 크레파스를 몇번이고 만져보며 기분이 우쭐해졌을 것을 생각하니 나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아이들이 받아든 필통이며 학용품들은 액수로는 사실 얼마 안 되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의 아빠가 "의무교육이란 게 이런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 것처럼 아이들을 위해 학교가 마련한 그 선물은 '의무교육'이 뭔가를 새삼 생각하게 했다. 아이들이 받은 것은 학교와 교육제도가 의무교육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더욱 온전히 다하려는 것의 표현이었다. 그 선물은 의무교육이란 법으로 취학을 강제하고 학비를 무료로 지급하는 것 이상의 의무가 있음을 일깨워주고 확인시켜 준 것이었다. 그것은 환대의 의무, 축복의 의무다. 호기심과 설렘 한 편에 육중한 교사(校舍) 앞에서 움츠러들기도 하는 어린이들을 학교가 온 정성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할 의무다.
어쩌면 선물을 받은 것은 아이들이 아닌지 모른다. 해마다 학교에 아이들이 들어오는 것은 한 문명, 한 사회를 면면히 잇는 사업에 어린이들이 자기 몫을 맡아 짊어진다는 것이다. 그들로 하여 이 사회가 소멸하지 않고 이어지는 것이니, 아직 낯선 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의 재잘대는 소리, 그것은 초봄 운동장의 땅 속에서 올라오는 움처럼 새로운 생명이 만물을 깨우는 기운이며 복음이다. 그러므로 학교가 마련한 선물은 실은 아이들이 준 큰 선물과 은혜에 감사하고 보답하는 우리 사회와 국가의 최소한의 답례이며 작은 정성인 것이다. 그들이 베풀어주는 선물에 비하면 너무나 보잘 것 없는 것에 불과한 보답인 것이다.
그렇게 받들어지고, 환대받고 귀한 대접을 받은 아이들은 너그러워지고 관대해지며 베푸는 법을 배울 것이다. 나누고 베푸는 일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를 배우게 될 것이다. 학교가 그런 곳이라는 것을 익히게 해 주는 것, 그것이 부모와 어른들의 몫이라는 것을 아는 것, 그것이야말로 의무교육을 완성시키는 진짜 의무일 것이다.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