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한진주 기자] "확정일자로 탈세 잡는다고 하니 집주인들이 벌써부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원룸 여러 채 보유한 집주인들 중에 팔겠다는 사람도 꽤 있다." (용산구 청파동 S공인)
"신용카드 소득공제율도 줄어드는 마당에 월세 소득공제를 늘려준다는 이야기가 반갑긴 하지만 집주인들이 월세 대신 관리비를 올려서 부족분을 채우거나 재계약할 때 월세를 높일까봐 걱정이다. 부동산 지식이 부족한 세입자들은 잘 모르고 당할 수도 있다." (3년차 직장인 이경진)
월세 소득공제 대상이 늘어나고 신청조건이 완화되면서 집주인들은 '멘붕(멘털붕괴)' 상태다. 임대사업자로 등록하지 않고 월세수입을 챙겼던 집주인들의 소득이 노출될 우려가 커져서다. 소득공제를 신청하지 않는 조건으로 세입자를 가려 받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월세로 상당한 수입을 지출하고 있는 직장인들은 소득공제 확대 소식을 반기면서도 월세 인상으로 이어질까 우려하는 모습이다.
지난달 26일 정부가 발표한 '임대차 선진화방안'에 따르면 올해부터 월세 소득공제 대상이 연소득 7000만원 이하인 무주택자로 확대됐다. 월세 소득공제가 세액공제로 바뀌어 월세의 10%(최대 750만원)까지 환급받을 수 있다. 지난해 월세소득공제 대상은 연소득 5000만원 이하인 무주택자였고 소득공제 범위도 연 500만원 한도 내에서 월세지급액의 60%까지만 가능했다.
예를 들어 총 급여가 3000만원인 직장인이 월세를 50만원씩 지출할 경우 종전에는 최고세율 6%를 적용받아 소득공제 환급액이 21만6000원이었다. 올해 지급한 월세부터는 같은 조건이라면 월세 50만원의 12개월치 600만원의 10% 세액공제가 적용돼 60만원을 돌려받을 수 있게 된다.
지난해까지는 확정일자를 받아야 했지만 올해 계약분부터는 확정일자 없이도 소득공제 신청이 가능하다. 그간 오피스텔 임대인들은 임대용도를 주거용으로 할 경우 부가세를 환급해야 하고 세 부담이 늘어나 확정일자를 받지 않는 조건으로 세입자를 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강남구 역삼동의 한 다가구주택에 거주하는 김용근(30·가명)씨는 "송금 내역까지 다 표로 만들어놓고 소득공제를 신청하려고 했는데 확정일자를 받지 않아서 소득공제도 못 받았다"며 "월급 4분의 1을 월세로 내는데 환급은커녕 오히려 세금을 뱉어내야 해서 속이 쓰렸는데 확정일자 없이도 가능하다고 하니 환영할 일"이라고 말했다.
반면 집주인들은 거부반응이 상당하다. 특히 대학가에서 원룸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집주인들 가운데는 하나만 남겨두고 팔겠다는 문의도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3주택 이상을 소유했거나 주택임대소득이 2000만원 이상인 사람들의 임대소득을 금융소득처럼 종합과세 대상에 포함시키기로 해서다.
숙명여대 인근 S공인 관계자는 "임대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수입이 노출되는 게 싫어서 1가구 1주택으로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팔겠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세금 부담 때문에 임대사업자로도 등록하지 않는 집주인들에게 소득공제를 신청하는 세입자는 '기피대상'이다. 특히 직장인, 대학생이 많은 대학가 원룸촌에서 임대사업자로 등록한 사람은 극소수다. 봉천동 A공인 관계자는 "여기는 소득공제 신청할 수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 것"이라면서 "집주인 10명 중 9명이 소득공제를 신청하지 않는 조건으로 세입자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세원 노출을 꺼려 계약서에 월세소득공제를 신청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특약사항에 명시하기도 한다. 심지어 확정일자도 받지 않는다는 조건을 다는 임대인도 있다. 문배동 P공인 관계자는 "집주인이 확정일자를 못 받게 하려고 계약서에 확정일자를 안 받는다는 문구를 넣어달라고 주문했다"며 "세금 추징한다고 하니까 오피스텔 매매를 꺼리는 분위기도 형성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청파동 S공인 관계자는 "법인이 월세를 처리해주는 경우에는 경비로 처리돼 월세가 임대소득에 잡혀 버리니까 집주인들이 이런 세입자는 안 받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월세소득공제 대상 확대로 집주인들의 세 부담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월세인상으로 전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옥수동 C공인 관계자는 "어제 월세 계약을 했는데 세입자가 다행히 직장을 안 다니는 자영업자라서 소득공제 신청을 안 해도 될 거라며 안도하는 집주인도 있었다"면서 "주인들의 세금부담이 높아지니까 월세를 세금부담만큼 높여 만회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용산구에 거주하는 6년차 직장인 이영수(31)씨는 "집주인이 계약서 쓸 때 소득공제 이야기가 없었지만 당장 이사 갈 계획이 없는데 집주인과 마찰 일으키는 것도 껄끄럽고 재계약을 할 때 월세 올려달라고 할까봐 신청하는 게 맞는지 고민이 된다"고 말했다.
세원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임대인들도 있지만 당장 임대차 시장에서 이탈하는 임대인들이 늘어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김종필 세무사는 "집주인 입장에서는 세금을 안 내고 손에 쥘 수 있었던 수익과 세금을 낸다고 가정했을 때 매각하고 다른 곳에 투자했을 때의 수익 크기를 비교해봐야 한다"며 "무조건 시장에서 빠져나가는 것보다 세금 내더라도 이게 더 낫다고 판단하면 유지할 것이므로 정부가 잘 조율해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진주 기자 truepear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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