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전 일을 다시 보는 느낌이다. 브라질과 미국 전지훈련에 나선 축구 국가대표팀이 지난달 30일 멕시코에 0-4로 대패한데 이어 2일 미국에 0-2로 졌다. 2002년으로 돌아가 보자. 한국은 1월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북중미카리브해축구연맹 선수권대회인 골드컵 조별리그 B조 첫 경기에서 미국에 1-2로 졌다. 요즘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송종국이 만회골을 넣었으나 2일 경기에 선발로 나섰던 랜던 도노반에게 선제 골, PSV 에인트호벤 시절 박지성의 동료였던 다마쿠스 비슬리에게 결승골을 얻어맞았다. 2차전에서는 약체 쿠바와 0-0으로 비겼다. 대표팀은 쿠바가 미국에 0-1로 져 다득점 차로 8강에 올랐다. 멕시코와 0-0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4-2로 이겨 준결승에 나선 한국은 코스타리카에 1-3으로 졌고, 3위 결정전에서 캐나다에 1-2로 패했다. 초청국으로 출전해 4위를 했지만 실제 성적은 2무 3패로 형편없었다. 국내에서 맹렬한 비난이 쏟아진 건 당연했다. 특히 거스 히딩크 감독은 ‘오대영’이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을 듣고 있던 터였다. 2001년 5월 대구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륙간컵대회에서 프랑스에 0-5로 지고, 그해 8월 브루노에서 열린 체코와의 친선경기에서 같은 점수로 패한 탓이었다. 사실 북미 원정에 나섰을 때 대표 선수들의 체력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셔틀 런’ 등 히딩크 감독의 강도 높은 체력 훈련 프로그램에 컨디션이 정상과 거리가 멀었다.
미국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포함해 최근 7개 대회 연속 월드컵에 진출했다. 1930년 제1회 대회(3위) 등 통산 10차례 월드컵 본선에 올랐는데 역대 전적에서는 한국에 3승 3무 5패로 밀리고 있다. 그러나 이번처럼 큰 대회를 앞둔 민감한 시기에 쓰라린 패배를 안기곤 한다. 지지는 않았지만 미국 때문에 아쉬움을 곱씹어야 했던 적도 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들은 홈의 이점으로 종목을 막론하고 좋은 성적을 기대하고 있었다. 축구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해 9월 18일 부산 구덕운동장에서 열린 축구 종목 조별 리그 C조 첫 경기에서 뒷날 한국 올림픽 대표팀을 이끌게 되는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이 이끄는 소련과 0-0으로 비겨 8강의 꿈을 키웠다. 그러나 꼭 이겨야 할 상대로 점찍었던 미국과 경기에서 0-0으로 비기면서 1라운드 통과의 꿈은 사실상 물거품이 됐다. 한국은 3차전에서 아르헨티나에 1-2로 졌고, 결국 1승 1무 1패의 아르헨티나가 조 2위로 8강에 올랐다. 소련은 결승에서 연장 접전 끝에 브라질을 2-1로 꺾고 1956년 멜버른 대회 이후 32년 만에 올림픽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 경기는 올림픽 축구 종목 결승 가운데 명승부로 꼽힌다.
1980년대까지 한국은 미국에 4승 1무로 앞섰다. 1990년대 이후로는 1승 2무 3패로 밀린다. 흔히 미국을 축구 신흥 강국이라고 한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1990년 이탈리아 대회 이후 월드컵에 개근하고 있기도 하고, 2006년 4월에는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이 4위까지 올랐다. 요즘도 10~20위권을 유지한다. 그런데 신흥 강국이라는 표현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1913년 결성된 미국축구연맹(USSF)은 1914년 FIFA 가맹국이 됐다. 미국은 1916년 스웨덴과 첫 A매치를 치러 3-2로 이겼다. 한반도에서 제대로 된 축구 대회가 열린 건 1921년(제 1회 전조선축구대회)의 일이다. 1904년 세인트루이스 올림픽에서 미국은 두 개의 클럽을 출전시켰다. 국가대표팀이 처음 출전한 건 1924년 파리 올림픽에서였다. 당시 선수들은 1회전에서 에스토니아를 1-0으로 꺾었으나 16강이 겨룬 2회전에서 우승국인 우루과이에 0-3으로 졌다.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는 16강이 겨룬 1회전에서 준우승국인 아르헨티나에 2-11로 대패했다. 이 충격 때문인지 1932년 미국이 개최한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는 축구가 경기 종목에서 제외됐다. 근대 올림픽에서 축구 종목이 열리지 않은 대회는 이 대회와 1896년 제1회 아테네 대회뿐이다. 축구 대신 시범종목으로 열린 미식축구에서 서부 지역 대학 올스타(캘리포니아·스탠퍼드·남캘리포니아)는 동부 지역 대학 올스타(예일·하바드·프린스턴)를 7-6으로 이겼다. 경기가 열린 메모리얼 콜로세움에는 6만여 명의 대관중이 들어찼다. 전 세계인이 즐기지만 미국인들로서는 따분한 축구(Soccer)보다 미식축구(American Footbal)가 훨씬 재미있었던 것이다.
이런저런 역사가 있는 미국과 한국 축구가 처음 만난 건 뜻밖에도 꽤 오래전의 일이다. 한국 대표팀은 1956년 9월 홍콩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아시안컵)에서 우승한 직후인 10월 3일 서울운동장에서 미국과 경기를 가졌다. 김동근의 결승골로 한국은 1-0으로 이겼다. 그 경기에 출전한 원로 축구인 박경호 선생은 미국이 당시 왜 한국에 왔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다만 미국 선수들이 미군 수송기를 타고 한국에 왔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미국은 그해 11월 멜버른에서 열린 하계 올림픽에 출전해 1회전에서 유고슬라비아에 1-9로 크게 졌다. 이 대회에는 일본, 인도,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3개국이 출전했다. 한국을 ‘모의고사’ 상대로 택했을지 모른다는 유추가 가능하다.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서 한국과 미국은 16강전에서 만날 수도 있다. 두 나라 모두 이번 경기와는 사뭇 다른 진용을 꾸릴 텐데 만약 8강 진출을 겨루게 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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