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현상을 집약해 보여줄 때 '3대 미스터리'나 '5대 변수' 같은 숫자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주목을 받기에는 이런 방법이 효과적이어서다. 그저 죽 나열해 놓기만 하면 뭔가 물렁하고 긴장감이 없어 흔히들 사용하는 기법이다. '십계명'이 나오기 이전부터 즐겨 활용돼온 레퍼토리여서 새로울 것도 없다.
급작스레 조류독감이 확산되며 수십만마리의 닭과 오리가 살처분되는 살풍경 속에 인간의 생존기반은 과연 무엇인지를 이런 기법으로 돌아보게 된다. 이름하여 '인간 생존기반의 3대 요소'다. 환경변화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변종 바이러스가 곳곳에서 생겨나고 이것이 인간의 삶을 위협하고 있으니 자연스레 건강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그런데 영국의 심리학자인 캐럴 로스웰과 인생 상담사 피트 코언은 인간생존의 3대 요소를 '건강, 돈, 인간관계'라고 일찌감치 발표했다. 지극히 현대 자본주의적 발상으로 볼 수 있지만 우리네 일반적인 생각과 상통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18년간 영국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인터뷰해서 도출한 결과라고 하니 더욱 믿음이 간다.
돈과 인간관계보다 건강한 삶을 우선 거론한 것은 극히 자연스럽다. 나머지 2개의 요소가 갖춰져 있다 해도 건강이 회복불가능한 상태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들의 주장과 달리 고전적으로 본다면 인간 생존의 3대 요소는 '의식주'다. 언젠가 '식의주'라고 순서를 바꾸는 게 낫다는 얘기도 많았다. 로스웰 등의 연구결과에서 우선 언급한 것처럼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들인데, 그 순서로 중요도를 따져본 셈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의식주라는 말이 내게는 좀 더 부드럽게 읽힌다.
생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음식이다. 기아에 허덕이는 인구가 69억명 중 10억명을 넘어설 정도여서 먹거리는 중요할 수밖에 없다. '웰빙' 바람 속에 외식산업의 성장속도도 가파르다. 체온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고 몸을 적절하게 가려주면서 맵시를 낼 수 있는 것이 옷이니만큼 의류도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발전에 따라 의류산업은 사양산업으로 치부됐다가 다시 한 번 주목을 받고 있다. 스포츠 등 기능성 고급 의류 시장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집은 어떤가. 의식주든, 식의주든 가장 마지막에 등장하는 집은 우리 사회에서 끊임없이 얘기되는 소재다. 과다하게 대출을 받아 집을 사거나 세 들어 살고 있는 이에게 집은 고통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확산되는 인식이 집은 '사는 것'이 아닌 '사는 곳'이란 개념이다. 학교를 갓 졸업하고 수습기자로 입사한 친구조차 "이제는 집주인, 세입자 가릴 것 없이 집을 사는 곳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고 단언할 정도다. 그런 생각이 많아진다고 해서 현실이 확 바뀌는 것은 아니다. 전세입자라면 뛰는 전세금에 속앓이해야 하고, 월세입자라면 다달이 지불해야 하는 월세에 힘들어할 수밖에 없다. 집주인이라고 마냥 속 편한 건 아니다. 정기적으로 나오는 세금 내야 하고 고장 나거나 잘못된 것을 돈 들여 고쳐야 한다.
더욱이 저금리 기조 속에 전세물건을 대거 월세로 전환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전세로만 내놓는 물건은 동나기 일쑤다. 허름한 재건축 대상 아파트마저 '귀하신 몸'이 됐다. 이러는 와중에 매매가 대비 전셋값 비중이 70%에 육박하고 있다. 수도권의 3.3㎡당 평균 집값이 1251만원이고 평균 전세금이 875만원에 달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주택시장에 만만찮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봉급생활자라면 목돈 대출로 이자 갚기에 전전하며 전세 살기보다 자가 보유를 원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주택 소비심리를 결정하는 2대 요인인 정책과 금리가 견고하게 뒷받침되고 있기에 설득력이 높다. 70%라는 수치가 미칠 영향이 새삼 궁금해진다.
소민호 건설부동산부장 sm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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