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성 보장되는 '베이비박스' 운영하자 숫자 급증…서울시 "예산·인력 모자라 한계"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아들은 서울로 보내라"는 옛말이 있다. 그런데 요즘 "아기를 버리려면 서울로 가라"는 희한한 말이 나돌고 있다.
몇 년 전 서울의 한 교회가 전국 유일의 '베이비박스'를 설치한 이후 지방에서 올라와 이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버리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서울 지역의 유기 아동 수가 급증했다. 서울시와 관할 지자체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 고아원 등 보호 시설의 정원이 가득 차 더 이상 수용할 데가 없고, 관련 예산이 소진돼 쓸 돈이 없는 상태다.
29일 서울시와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최근 몇 년 새 서울 지역의 유기 아동 숫자는 급증세다. 2010년 43명에서 2011년 70명, 2012년 147명으로 폭증세를 보였고, 올해는 10월 말 현재 이미 200명을 훌쩍 뛰어넘은 상태다.
특이한 것은 다른 시도의 유기 아동 발생 건수는 오히려 줄었다는 것이다. 경기도만 해도 서울보다 인구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유기 아동 수가 2011년 29명에서 2012년 26명, 부산은 2011년 23명에서 2012년 16명 등으로 감소하는 등 서울을 제외한 시도들에서 버려진 아기들의 숫자는 계속 줄고 있다. 이에 따라 전국 유기아동 발생 건수 중 서울시가 차지하는 비율은 크게 높아졌다. 2010년까지만 해도 191명 중 43명(22.5%)으로 인구 비례와 비슷한 규모였지만 2011년 218명 중 70명(32%)으로 급증하더니, 2012년에는 235명 중 147명으로 폭증했다. 전국에서 버려지는 아기들의 62.5%가 서울에서 발견된 것이다.
이처럼 서울 지역에서 유독 버려지는 아기의 숫자가 급증한 것에 대해 서울시는 서울 관악구의 한 교회가 전국에서 유일하게 운영 중인 미인가 시설 '베이비박스' 때문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교회는 2009년부터 "유기 아동의 생명을 보호하겠다"며 교회 담벼락에 공간을 만들어 아기를 버릴 수 있는 '베이비박스'를 만들어 운영 중이다.
시는 이 베이비박스가 전국에 널리 알려지면서 각 지역의 미혼모 등 아기를 버리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유기 아동 수가 급증했다고 보고 있다. 특히 2010년 입양 시설에 아기를 갖다 맡기려면 출생신고를 하도록 의무화한 입양특례법 개정안이 발효되면서 이 규정을 피해 아기를 '쉽게' 버리려는 사람들이 베이비박스를 찾아오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이 교회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이는 2010년 4명, 2011년 37명, 2012년 79명, 2013년 10월 말 현재 214명 등 급격히 늘어나 서울 지역에서 발생한 유기아동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이로 인해 서울시의 유기아동 양육 시설이 포화되고 관련 예산이 소진돼 더 이상 버려진 아이들을 수용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이들은 응급 조치만 마친 후 대부분 서울 시내 33곳의 보호 시설에 수용됐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새 급증한 아이들로 인해 수용 가능 인원을 초과한 상태다. 관악구와 서울시는 더 이상 아이들을 받을 수 없다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최근 일부 언론에서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이들을 시설에 받지 않겠다고 통보했다고 보도한 것은 사실이 아니며 현실적 어려움 때문에 교회 측에서 좀 더 아이들을 데리고 있어 달라고 부탁한 것일 뿐"이라며 "보건복지부와 협의해 특별 교부금 지원 또는 타 지역 시설 활용 등의 방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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