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민간분양 아파트 중 외래어 80% "그래야 소비자들 고급스럽다고 느껴"
[아시아경제 박미주 기자]압도적 주거형태인 아파트 이름은 우리말의 우수성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한글날' 돌아보기에 민망한 수준이다. 각종 외래어가 난무하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보그병신체'식의 이름을 쉽게 붙이고 있다는 지적을 내놓는다. 보그병신체는 패션지 '보그' 등에서 영어와 프랑스어 등 외래어를 번역하지 않고 소리 나는 대로 단어를 연이어 써서 만든 비문을 빗댄 속칭이다.
하지만 건설사들은 마케팅 수요조사 등을 통해 브랜드를 만들고 있다며 수요자들의 기호를 반영한 것이라는 설명을 내놓고 있다.
9일 금융결제원에 따르면 이달 총 89개의 아파트 분양단지 중 보금자리주택, 공공분양·국민임대주택 등 69개 단지를 제외한 민간업체 분양 20개 단지 중 순수 한글 이름을 지닌 아파트는 4개 단지에 불과하다. ㈜부영주택의 충북오창 '사랑으로', 금호건설의 '평택 용이 금호어울림'이 유일하다.
민간 분양 아파트의 80% 이상이 우리 말을 변형해 만들었거나 외래어를 차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관악파크 푸르지오 ▲내포신도시 경남아너스빌 ▲대구 월배2차 아이파크 ▲덕수궁 롯데캐슬 ▲동탄2 반도유보라 아이비파크 2.0 ▲미사강변 푸르지오 ▲세종 EG the1(이지더원) ▲안성 롯데캐슬 센트럴시티 ▲안양 호계 푸르지오 ▲오창 모아미래도 와이드파크 ▲오창 모아미래도 와이드시티 ▲위례 그린파크 푸르지오 ▲위례 센트럴 푸르지오 ▲창원 삼계블루힐스 ▲통영 동원로얄듀크 ▲평택청북 유승한내들 퍼스트뷰 등이다.
푸르지오, 경남아너스빌, 롯데캐슬 등은 아파트 브랜드 자체에 영어이름이 들어있다. 푸르지오는 푸르다와 영어 땅을 의미하는 지오(geo)의 합성어다. 경남아너스빌에서 아너스빌(honorsville)은 명예와 빌라를 섞어 만든 명칭이다. 롯데건설도 회사 이름에 성(城)을 의미하는 캐슬(castle)을 붙여 브랜드를 만들었다.
최근에는 아파트 브랜드 외에 외래어 수식어를 이름에 더하는 것이 대세가 됐다. 워낙 많이 추가 이름을 넣다 보니 업계에서는 이를 지칭하는 '펫네임'이라는 단어가 생겼다. 일례로 반도건설이 이번 주 청약접수를 받은 아파트 '동탄2 반도유보라 아이비파크 2.0'에서 반도유보라는 회사 브랜드, 아이비파크는 펫네임이다. 롯데건설이 내놓는 '안성 롯데캐슬 센트럴시티'라는 아파트 이름에도 브랜드뿐 아니라 센트럴시티라는 별칭이 붙었다.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외래어 이름이 고급스럽다는 소비자의 생각을 반영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이달 민간 아파트를 가장 많이 분양하는 대우건설 관계자는 "고객들이 이름에 영어를 써야 고급스럽다고 느끼고 집값도 올라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며 "그래서 여태까지 아파트 펫네임에 우리말을 붙인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우리말 이름의 반응이 좋았던 적도 있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대구도시공사가 시행한 아파트라 이름이 '죽곡 청아람 푸르지오'였는데 청아람이라는 이름이 예뻐서 마음에 든다는 고객들이 많았다"면서 "아파트 이름을 우리말로 지을 수 있도록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미주 기자 beyond@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