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미국 연방정부 채무 불이행(디폴트)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뉴욕 주식시장은 오히려 평화롭다. 투자자들은 미 정치권이 디폴트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몰고 가지 않으리라 기대하는 듯하다. 아니면 디폴트가 어떤 식으로 실체를 드러낼지 아직 체감하지 못한 탓일 수도 있다.
미 경제 격주간지 포천은 미 연방정부 디폴트가 투자자들이 미처 생각지 못했던 방식으로 소위 '멘붕(?)'에 빠뜨릴 수 있는 몇 가지 이유들을 최근 소개했다.
RBC 캐피털 마케츠에 따르면 우선 월가의 거래 시스템은 디폴트된 채권을 따로 분류할 수 있도록 설계가 돼 있지 않다. 일부 성분 때문에 정크푸드로 취급받는 핫도그처럼 특정 채권에서 문제가 생기면 채권 시장 전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마이클 클로허티 RBC 캐피털 마케츠의 투자전략 부문 대표는 "거래 시장이 만들어졌을 때 아무도 미 국채 디폴트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주택 관련 채권이 디폴트됐을 때에도 다른 채권 시장에서 그 피해가 확인된다"며 "가장 안전한 채권으로 여겨지는 국채에 문제가 생기면 그 피해는 매우 심각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월가 은행의 컴퓨터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이들도 역시 Y2K 문제를 생각지 않았던 것처럼 미국 연방정부 디폴트라는 상황을 가정한 프로그램이 설계돼 있지 않다.
월가 은행들의 컴퓨터 시스템은 자동으로 국채 투자자들에게 투자 수익금을 지급되도록 프로그램돼 있다. 즉 미국 연방정부가 국채 원리금을 상환하지 못하는 상황은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미국 연방정부가 국채에 대한 원리금을 상환했는지 여부를 체크하는 기능이 없는 것이다.
이는 곧 현재 프로그램이 가동되는 상황에서 연방정부가 국채에 대한 원리금을 상환하지 않는다면 은행 자금이 대규모로 빠져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은행이 채권 거래를 중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다른 파생상품 등의 거래에서도 연방정부가 국채 원리금을 지급한다는 것을 기본전제로 프로그램화돼 있다.
일각에서는 디폴트가 발생해도 국채 거래가 이뤄질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미국금융산업시장협회(SIFMA)에 따르면 디폴트된 채권은 사전 공지 없이 거래가 이뤄지지 못하도록 돼 있다. 이는 곧 디폴트된 채권은 곧 시장에서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트레이더들은 디폴트된 채권을 거래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투자자들 역시 한동안 투자 원리금을 되돌려받을 수 없다는 점을 굳이 감수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은행들의 단기 자금 조달 창구인 레포 시장은 급격한 혼란에 빠져들 수 있다. 은행들이 단기 자금을 조달하면서 담보로 맡기는 주된 대상이 미 국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 정부가 국채 원리금을 상환하지 않으면 단기 금리가 치솟게 된다. 이 같은 현상은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했던 2011년 8월 확인된 바 있다.
기업들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기업어음(CP) 시장의 큰손인 머니마켓펀드(MMF)들이 미 단기 국채를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방정부가 디폴트되면 당장 24일 1200억달러의 채권이 디폴트 상태에 빠진다. 2분기 전체적으로 늘어난 대출이 750억달러라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신용경색을 야기할 수 있는 규모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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