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잔액 12조$중 절반이 외국 정부 등 보유...버핏, 디폴트는 핵폭탄 경고
[아시아경제 박희준 기자]미국 부채한도 상향과 관련해 공화당과 민주당이 칼 끝 대치를 하면서 미국이 만기가 돌아오는 국채에 대해 디폴트(채무불이행)를 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미국 재무부는 월 8000만건에 이르는 수많은 결제를 하는 만큼 다른 결제를 미루고 만기 국채 원금과 이자를 지급해 디폴트는 쉽게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치더라도 디폴트가 발생할 경우 전세계 금융시장과 경제에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파문을 일으킬 것인 만큼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사진위)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등 미국 재계인사들은 미국 정치권을 강하게 성토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 단기 국채 1200억달러어치가 오는 17일 만기가 된다. 또 24일에는 추가로 930억달러어치,이달 말에는 1500억달러어치의 장단기 국채 만기가 만기가 각각 돌아온다.
17일부터 다음달 7일까지 만기가 되는 미국 국채는 총 4170억달러어치다.
그런데 재무부 잔고는 이달 말이면 고갈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제이콥 루 재무부 장관(사진위)은 6일 방송출연을 비롯해 그동안 17일이면 재무부가 보유한 현금은 300억달러로 줄어들 것이며 하루 지출 수요는 최대 60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며 부채한도 상향조정을 촉구해왔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재무부의 잔고는 10월31일이면 고갈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지만 일부 분석가들은 그보다 이른 시기에 바닥이 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미국이 만약 만기도래 국채를 디폴트하면 1790년 이후 처음이 된다. 미국은 당시 각 주 정부가 발행한 채권 이자지급을 1801년까지 유예했다.
만기도래 국채의 디폴트가 발생한다면 세계 금융시장이 붕괴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이는 국채 발행 잔액이 무려 12조달러인데다 그 절반을 외국 정부와 중앙은행, 개인 투자자들이 보유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리먼 브러더스가 도산했을 때 부채액 5170억달러의 23배인데도 미국은 이후 3조달러를 금융시스템에 투입했고 미국 재무부는 은행 자본 확충을 위해 3000억달러를 투입해야 했는데 23배의 부채가 디폴트가 된다면 도대체 얼마를 투입해야 할지 모른다.
미국 국채는 미국의 시중은행과 투자은행들이 단기자본을 조달하는 환매조건부시장(RP)의 담보가 되고 미국 국채의 채권등급은 파생상품 시장의 근간이 된다. 블룸버그는 최소 2조8700억달러어치의 미국 국채가 RP시장의 담보물로 제공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중국이 1조3000억달러어치,일본이 1조1000억달러어치를 외환보유고로 보유하는 등 각국 중앙은행의 외환보유고의 주요 투자 대상이 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이 만기가 돌아오는 국채를 디폴트할 경우 이는 RP시장과 파생상품을 초토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RP시장에서 아무도 미국 국채를 담보로 받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담보가치 하락과 추가 담보 요구로 이어지고 결국 금리인상을 낳게 된다. 현재 RP시장에서 저금리로 조달한 자금이 미국 전체의 낮은 금리의 밑바탕이 되고 있다. 현재 미국 국채 금리는 2.5~2.6%대다.
미국 국채에 대한 신용평가사의 신인도 하락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국제 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2011년 부채한도 상승 교착상태로 미국 국채 등급을 기존 트리플 A(AAA)에서 더플 A 플러스(AA+)로 강등했지만 이 때도 디폴트는 없어 국채 수요는 증가했다.
미국 국채가 디폴트를 낸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신용등급이 한 단계가 아니라 몇 단계가 떨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조 단위로 거래되는 파생금융상품 시장은 미국 국채의 신용등급을 바탕으로 거래되는 데 미국 국채의 신용등급이 하락한다면 시장 자체가 요동칠 수밖에 없다.
블룸버그는 최소 5조달러 시장이 요동쳐 금리 인상이 뒤따를 게 불을 보듯 뻔하다. RP 시장에서 다른 담보를 제공하거나 금리를 더 얹어주고 돈을 빌린 은행과 투자은행들은 당연히 대출금리를 올려 비용을 보전하려 들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모기지)금리는 물론, 회사채의 수익률도 오를 수밖에 없다. 대출금리가 오르면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주택 소유자들의 상환능력은 크게 줄어드는 만큼 미국 경제회복의 견인차인 주택시장도 타격을 입는 것은 물론, 부실대출 증가로 은행도 타격을 입게 된다.
블룸버그통신은 30년 만기 모기지 대출금리가 현행 4.5%에서 6.5%로 오른다면 현재 20만달러의 융자금을 상환할 수 있는 대출자가 주택을 산다면 16만달러 정도에 대해서만 상환능력을 갖출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번에는 미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는 은행을 구제할 여력이 없다는 게 문제다.
주가 급락에 따른 시가 총액 감소도 예상된다. 리먼 브러더스 도산후 5개월 사이에 미국 주식시장에서 시가총액은 절반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미국은 대공황이후 최악의 경기침체를 경험했으며, 세계 경제는 하강하고 실업률은 지난 30년 사이에 가장 높은 10%대로 치솟았다.
이처럼 상상을 초월할 파장이 예상됨에 따라 미국의 주요 은행들은 지점에 현금을 확충하는 등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을 짜고 있지만 아무도 결과를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 리먼 도산 이후에도 월스트리트의 은행들은 워룸(위기상황실)을 설치하고 리먼 도산에 따른 충격을 예상하고 대응전략을 짰지만 이들은 부도위험(크레디트 디폴트 스왑)만 걱정했지 도산의 전염효과는 예상하지 못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업체 블랙록의 러스 코스테리치 최고투자전략가(CIS.사진위)는 불룸버그에 “지금까지 미국 국채의 디폴트 전례가 없는 만큼 아무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면서 “모두가 맹목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디폴트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매우 높다. 세계 최대 채권펀드인 핌코의 모하메드 엘 에리언 최고경영자(CEO.사진위)는 “그게(디폴트)가 일어난다면 큰 일”이라면서 “다른 시장에 디폴트를 전파해 경제성장의 역풍이 되고 세계경제에서 미국의 역할을 잠식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재무부 관료를 지낸 팀 비츠버거 BNP파리바 뉴욕 전무이사는 “이자지급을 못한다면 리먼 사태를 납작하게 만들 것”이라면서 “리먼은 개별회사였지만 지금 운위하는 것은 미국 정부”라고 일갈했다.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워런 버핏 회장은 최근 미국의 경제잡지 포천과 가진 인터뷰에서 “그것은 너무 끔찍해서 쓸 수 없는 핵폭탄과 같다”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박희준 기자 jacklondo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