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충무로에서]질펀한 유흥접대비에 세금 물리자

시계아이콘01분 40초 소요

[충무로에서]질펀한 유흥접대비에 세금 물리자 강남대 세무학 교수
AD

세법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와 관련된 비용을 정상 경비로 간주해 세금을 줄여주는 제도가 눈에 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접대비 손금산입 제도다. 2011년 회계연도에 법인기업들이 신고한 접대비가 무려 8조3000억원이다. 세법은 매출액 등에 따라 한도를 정해 그 범위 이내 접대비는 비용으로 인정한다. 이로 인해 연간 2조원 남짓한 법인세를 거두지 못했다.


우리 사회 분위기나 기업 풍토상 접대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세법상 접대비 손금산입 제도로 인해 부정부패 등 사회의 구조적 악이 기생할 공간을 제공한다면 바로잡는 것이 옳은 방향이다. 그렇다고 기업이 접대 자체를 해선 안 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접대를 하고 안 하고는 기업이 판단할 사안이지만, 적어도 질펀한 유흥접대비는 비용 공제를 까다롭게 함으로써 세금을 부담시켜야 마땅하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첫째, 투명성 결여다. 실무상 접대비 영수증을 보면 누가 누구를 무엇 때문에 접대했는지 알 수 없다. 이명박 정부 이전에는 건당 50만원 이상 지출에 대해선 6하원칙에 입각해 구체적인 내역을 적어야 비용으로 인정했다. 그런데 경제 활성화를 저해한다는 이유로 없애버렸다. 질펀하게 마셔대는 술 때문에 유흥업소 매출이야 오르겠지만, 그중 상당 부분은 세금을 내지 않는 '지하경제'와 관련이 있다. 그리고 '술 취한 사회'가 끼치는 해악이 적지 않다.


실무적으로도 진정으로 회사를 위한 지출인지 개인적인 지출인지를 구별할 방법이 없다. 회장 사모님 옷을 사고 심지어 가족이 회식하는 데에도 법인카드로 결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둘째, 공평성 문제다. 재무관리를 촘촘히 하는 회사는 불필요한 접대비 지출을 줄일 것이다. 이런 회사는 이익이 많이 나서 법인세를 많이 낸다. 거꾸로 접대비를 물 쓰듯 하는 회사는 경비가 많아짐에 따라 이익이 줄고 그 결과 법인세를 덜 낸다. 공부 못한 학생이 A학점을 받는 반면 열심히 한 학생이 C학점을 받는 꼴이다.


더구나 기업들로선 결산 때 법인세를 부당히 줄일 목적으로 접대비 가공계상이란 유혹에 빠져들게 된다. 과세관청의 접대비 사후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 출신 금융가 그레샴이 말한 대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격이다. 질펀한 접대비로 인해 건전한 접대비까지 싸잡아 욕을 먹는다.


셋째, 범죄 유발요인 제거다. 접대비 손금산입 제도가 존재함으로 인해 이른바 '갑'의 위치에 있는 자들이 당연한 듯 손이나 입을 벌릴 수 있다. 과거 기밀비라는 항목이 있었다. 영수증빙이 없어도 매출액의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은 비용으로 인정했다. 이를 악용해 일부 정치권 인사들이 기업들을 찾아다니며 죄의식도 없이 손을 벌렸다. 정치자금 제공을 압박하는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이를 없앴더니 기밀비 달라는 얘기를 대놓고 하진 못한다.


결론적으로 질펀한 접대문화를 고쳐야 한다. 선진국을 보면 접대비 손금산입 제도와 같은 것은 아예 없거나 있어도 1인당 1만원 이내 소액에 그친다. 이 한도를 넘으면 접대를 받는 사람은 뇌물을 받은 사람이 되고, 접대한 사람은 뇌물을 준 사람이 되어 둘 다 처벌받는다. 물론 공연예술 관람권이나 도서구입권 등을 고객에게 제공하는 문화접대비는 존속시킬 가치가 있다고 본다. 사회의 품격을 높이고 문화를 융성하게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기초연금 등 복지 재원 마련 방안을 놓고 논란이 뜨겁다. 이참에 유흥접대비 손금산입 제도를 대폭 축소하자. 그러면 매년 2조원이 확보된다. 덤으로 사회가 깨끗해지고 구성원도 건강해진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 교수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