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겨루기에 커지는 디폴트 위기
[아시아경제 뉴욕=김근철 특파원] '설마' 했던 미국 연방 정부 일시폐쇄(셧다운)가 벌써 1주일을 넘기고 있다.
당초 미국민들 사이에선 '셧다운이 실제로 일어나긴 힘들 것'이라거나 '셧다운 사태가 벌어져도 단기간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지난달 미국의 지역 언론인 크로니클 트리뷴은 '셧다운 발생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느냐'라고 묻는 온라인 여론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그렇다'라는 답변은 19.5%에 불과했는데 '걱정하지 않는다'란 답변은 80.5%나 됐다.
정도의 차이가 있었지만 언론이나 전문가들도 대부분 정치권의 재정협상이 현재의 상황까지 치닫게 되리라곤 예견치 못했다.
CNN의 정치전문 앵커 울프 블리처조차도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밤 "셧다운에 들어가려면 몇 시간밖에 남지 않았지만 공화, 민주당이 밤 12시 전에 타협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며 희망의 끈을 놓치 않았다.
하지만 요즘 미국인들의 입에선 "정치인들에 대한 기대가 너무 높았다"는 푸념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도 워싱턴 정가의 교착 상태는 한 치의 진전도 없는 상태다. 상황이 이쯤 되자 셧다운 장기화와 정부 부채 상한 증액 협상 실패로 인한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까지 심각하게 걱정하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월스트리트도 마찬가지다. 다소 느긋하게 정치권의 재정협상을 지켜보고 있던 미 금융가에서도 비상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경제전문 채널 CNBC나 로이터 통신 등은 주요 은행들이 이미 비상시에 대비, 충분한 현금 확보와 은행 시스템 보완 등 비상점검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의 마크 잔디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주말 미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최근 정치권의 협상 지연으로) 앞으로 수년간 일자리 100만개가 줄어드는 피해가 생길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극심한 정쟁이 힘들게 회복해가고 있는 경제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란 우려가 현실로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 같은 '워싱턴 리스크'가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정시간이 지나면 셧다운도, 디폴트 위험도 어떤 형태로든 정리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극한 대치를 반복하고 있는 워싱턴 정가의 구조와 문화는 언제든 또 다른 이슈로 미국과 글로벌 경제에 부담을 줄 가능성이 높다.
뉴욕타임스(NYT)는 6일자 신문 1면에 "이번 재정 위기는 이미 공화당 강경파와 티파티에 의해 수개월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됐던 것"이라는 내용의 분석 기사를 실었다. 기사는 그만큼 정치적 불신의 뿌리가 깊고 현재 드러난 논란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워싱턴 정가에선 주요 쟁점에 대한 타협과 중재가 사라진 지 오래다. 티파티가 후원하는 강경파 의원들이 공화당의 주도권을 쥐면서 거의 매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향한 전면전을 치르고 있는 분위기다. 오바마 대통령이나 민주당 지도부도 이들의 공세를 품어줄 의지도, 여유도 없다.
현재 미 하원은 공화당이, 상원은 민주당이 각각 다수당이다. 그나마 민주당은 상원에서 54석을 차지하고 있지만 안정적으로 의사진행을 할 수 있는 60석에는 못 미친다. 야당인 공화당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법안 처리를 막고 정부기능을 마비시킬 수 있는 구조다.
여기에 공화당과 티파티는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집중공세를 통해 내년 중간선거에서 상원까지 장악한 뒤 2016년 대선 승리로 이어간다는 시간표에 맞춰 움직이고 있다. 앞으로도 워싱턴 정가가 정치 공방으로 날을 지샐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번 재정협상 공방은 미국 및 글로벌 금융시장에 그동안 내연하고 있던 워싱턴 리스크의 실체와 위험성을 새삼 확인시켜준 셈이다.
최근 미국 샌프란시코 연방준비 은행의 이코노미스트인 실베인 레덕과 쳉 리우는 미국 정치권의 불확실성이 없었다면 지난해 미국 실업률은 6.5%까지 낮아졌을 것이란 분석을 담은 보고서를 내놓은 바 있다.
미국의 지난 8월 실업률은 7.3%였다. 정치 리스크가 주는 부담이 얼마나 큰지 가늠케 하는 조사다. 장기간 이어질 워싱턴 리스크에 대한 꼼꼼한 점검과 대비가 필요해진 이유다.
뉴욕=김근철 특파원 kckim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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