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는 우리나라 산업·기술·인물·역사 속에 숨어 있는 다양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아 전자책(e-book) <흥미진진 경제다반사>를 발간했다. 이 전자책은 산업통상자원부 공식 블로그인 '경제다반사'에 게재된 6500여건의 콘텐츠 가운데 30건 만을 엄선해 제작한 것이다. '대한민국 최초·흥미진진 신기술' 등 즐겁고 유익한 내용을 간추려 전한다.
[아시아경제 김혜원 기자] 대한민국에서 널리 사용되고 사랑 받는 상품들의 '처음' 모습은 어땠을까. 그 첫 번째는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라면'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 생산되는 라면은 약 35억개다. 이를 5000만 인구로 나누면 국민 1인당 한 해 64개의 라면을 먹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50년 전에 처음 나온 라면은 불과 10원에 판매됐다. 현재 시판 중인 라면의 가격은 평균 800원. 50년 사이에 80배 이상 몸값이 폭등한 셈이다.
한국 최초의 라면은 1963년 9월15일 삼양식품공업주식회사에서 개발했다. 당시 전중윤 삼양식품 회장은 6·25 전쟁을 겪은 우리 국민이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꿀꿀이죽'을 먹으려고 길게 줄을 선 모습을 보며 과거 일본에서 라면을 먹었던 기억을 떠올리고 이를 한국인의 대체 식품으로 들여오자고 마음먹었다.
전 회장은 라면 도입을 위해 정부를 설득했고 정부의 승인과 함께 5만달러의 지원금을 받아냈다. 그는 일본의 묘조식품(명성식품)과 접촉해 두 대의 라면 제조 기계와 기술을 들여왔다.
삼양식품에서 처음 만든 라면은 닭고기 맛이었다. 닭 국물을 육수로 쓰던 일본의 라면 기술을 그대로 도입해 만들었기 때문이다.
당시 커피는 35원에 팔렸고 꿀꿀이죽은 5원 정도였다. 10원짜리 라면은 무척 저렴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최초의 라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그저 그랬다.
"그런 손바닥만 한 천으로 무슨 옷을 만들어 입어?"라며 라면의 '면'을 섬유나 실로 오해한 사람도 있었고 맵고 짠 음식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의 입맛에 기름진 닭고기 육수가 맞지 않다는 이유다.
"고춧가루를 좀 더 넣으면 좋겠소." 산더미처럼 쌓인 라면 재고를 보며 삼양식품이 고심하고 있을 때 고(故) 박정희 대통령은 이런 말을 했다.
한국인의 입맛에 맞춰 다시 개발한 라면은 이후 70년대 들어 국민 기호식품으로 자리 잡게 됐다.
1980년대는 한국 라면의 전성시대였다. 삼양식품 외에 롯데공업(현 농심), 럭키(현 LG), 빙그레, 오뚜기, 야쿠르트 등 다양한 기업이 라면 제조에 뛰어들었다. '사발면' '너구리' '안성탕면' '짜파게티' '팔도비빔면' '신라면' 등 우리에게 익숙한 라면들이 모두 80년대 출시됐다.
승승가도를 달리던 '라면'에도 위기는 찾아왔다. 1989년 삼양식품이 공업용 소기름을 라면 제조에 사용했다는 '우지 파동'이 일어난 것. 이 파동은 8년 뒤 법정에서 무죄 판정을 받았지만 라면을 즐겨 먹던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1990년대 후반, 라면은 하나의 '요리'로 자리 잡게 됐다. 면은 기존의 국수를 기름에 튀겨 건조하는 방식에서 생면을 가공해 포장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생생우동'이나 '수타면'이 이때 출시됐다. 라면의 해외 수출도 이 즈음부터다.
2011년에는 '꼬꼬면' '나가사키 짬뽕' 등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붉은색 국물 일색이던 라면 판도를 하얀 국물로 바꾸기도 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하얀국물 라면이 바로 50년 전 싱겁다는 이유로 국민들에게 외면 받았던 한국 최초의 라면과 비슷하다는 점이다.
닭 그림이 그려진 10원짜리 노란색 라면은 반세기 뒤 연간 2조원 규모의 거대한 시장을 만들었다. 지난 50년 동안 쌀과 함께 우리나라 사람들의 밥상을 지켜온 라면은 이제 한국인에겐 떼려야 뗄 수 없는 친근한 식품이 됐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늘, 얼큰한 라면 한 그릇 먹으며 50년 전 라면의 맛을 그려보는 건 어떨까.
김혜원 기자 kimhy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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