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터키)=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정홍원 국무총리는 자신의 해외 순방을 두고 '사각지대 커버 외교'라고 강조했다. 이번 정 총리의 중동·서남 아시아 순방에서 외교적 허점이 드러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정 총리는 8월25일부터 9월1일까지 바레인, 카타르, 스리랑카, 터키 등 중동·서남아시아 4개국을 순방하는 강행군을 했다. 빡빡한 일정으로 짜여졌다. 순방하는 각 나라의 왕, 대통령, 총리와 연쇄회담을 통해 얻은 소득도 많지만 총리 해외 순방에 허점도 많이 노출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특히 이번 순방은 지난 5월 태국 순방에 이어 두 번째임에도 불구하고 매끄럽지 못한 외교 일정과 형식에만 급급한 나머지 내실에는 부족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심지어 일부 수행원들은 스리랑카 대통령궁에 들어갈 때 국가 간 문제가 될 수 있는 성희롱에 가까운 몸수색을 당해 빈축을 샀다.
또 총리 순방에 일부 일정 중 수행원들이 두 쪽으로 나눠지면서 공항에서 4시간 가까이 반 강제적인 억류를 당하기도 하는 수모를 당했다. 총리 순방 일정을 챙겨야 할 외교부는 그러나 자신들의 일정에 따라 총리는 물론 수행원들을 이끌고 다니는 등의 행태까지 보여 앞으로 총리 해외순방에 있어 해결해야 할 숙제로 떠올랐다.
◆스리랑카 대통령궁 '성희롱' 몸수색…국가수치=지난 30일 오전(현지시간) 정홍원 국무총리는 스리랑카 라자팍사 대통령과 자야라트너 총리와 회담을 위해 대통령궁을 찾았다. 1977년 수교 이래 36년 만에 우리나라 총리로서는 공식 방문하는 뜻 깊은 자리였다. 그러나 몇몇 수행원들이 대열에서 이탈하면서 뒤늦게 대통령궁에 도착했다.
외교부가 의전 행사를 할 때 전체 인원을 체크하고 일일이 점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몇몇 수행원들과 연락을 제대로 주고받지 않아 일어난 일이었다. 뒤처져진 수행원들은 대통령궁에 들어가기 위해 '스리랑카식(式) 몸수색'을 당했다.
스리랑카 대통령궁 직원들은 우리나라 공식 수행원임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샅샅이 몸을 수색했다. 기계 장치를 이용한 수색이 아니라 손으로 직접 수색했다. 더욱이 충격적이었던 것은 남성의 은밀한 부위까지 손으로 더듬는 행태를 서슴지 않았다.
이에 대해 강력 항의하자 스리랑카 대통령궁 경호실측은 뒤늦게 "타밀 반군과 내전에서 자폭테러가 많았는데 대부분 은밀한 곳에 폭탄을 설치했기 때문에 이런 몸수색 문화가 아직 남아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들은 몸수색에 앞서 그런 문화적 배경을 설명하지 않았다. 또 외교부가 스리랑카에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이런 정보를 우리 수행원들에게 미리 설명한 적도 없다. 한국 수행원이 스리랑카에서 대대적인 수모를 당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소통 부재, 인도 뭄바이 공항 4시간 반 강제 억류=이런 수모만이 아니다. 곳곳에서 빈틈이 드러났다. 전체 일정에 대한 사전 합의가 되지 않아 불거진 문제이다. 정 총리는 스리랑카 방문을 끝낸 뒤 30일 저녁 늦게 터키로 이동하면서 비행기 일정상 본대와 합류대 등 두 개로 나눠 출발했다. 총리와 같이 가는 본대는 몰디브를 거쳐 이스탄불에 31일 오전 5시35분에 도착했다. 이에 반해 합류대원들은 인도 뭄바이를 거쳐 이스탄불에 31일 오전 9시45분에 도착했다. 이스탄불에 도착한 시간을 보면 본대와 합류대의 시간 차가 5시간이나 된다.
더 큰 문제가 됐던 것은 인도 뭄바이를 거쳐 이스탄불에 도착한 수행원들은 뭄바이 공항에서 이스탄불로 비행기를 갈아타는 과정에서 공항에 약 4시간 정도 반강제적인 억류를 당하기도 했다. 이 또한 외교부의 철저하지 않은 준비 때문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순방과 관련된 e티켓 전체 일정을 가지고 있어야 했는데 뭄바이 수행원들은 스리랑카에서 뭄바이, 이스탄불에 가는 e티켓만 가지고 있었다.
인도 뭄바이 공항 관계자는 "전체 일정의 e티켓이 필요하다"고 밝혀 뒤늦게 관계자들이 인도대사관은 물론 뭄바이영사관까지 새벽 2시에 전화를 거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정 총리는 30일 스리랑카를 떠나기에 앞서 동행 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총리 외교'는 사각지대를 없애는 외교라고 강조한 바 있다. 정 총리는 "외교를 통해 국익을 가장 많이 신장시키는 건 당연히 대통령 외교"라고 말한 뒤 "(대통령이)세계 곳곳을 다닐 수 없기 때문에 총리가 해야 하는 외교 공간이 있다"고 말했다. 정 총리는 "총리는 그 사각지대를 보완해야 하는 외교를 펼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작 이번 중동·서남아시아 순방에서 보여준 외교부의 의전과 외교부·총리실 관계자들의 불통으로 여러 가지 잡음이 발생한 것이다. 우리나라 국격을 떨어트리는 사태는 물론 총리 의전에 구멍이 생기는 상황까지 이어졌다. 원활하지 못한 일정으로 비효율성이 높아졌다는 평가이다. 해외 순방의 효율성을 높이고 국격을 올리기 위해서는 먼저 부처 내부의 불통 등 사각지대 부터 없애는 것이 우선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스탄불(터키)=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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