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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광복절, 제인 구달과 국가의 품

시계아이콘01분 12초 소요

세상에 미인들은 많다. 그러나 그 미모 이상으로 매혹적인 면을 발견하게 되는 여인들은 흔치 않은데, 침팬지 연구로 유명한 제인 구달 여사에게서 나는 그런 아름다움을 본다. 그의 평온하면서도 기품 있는 표정을 보노라면 진정한 미모는 선명한 이목구비나 날씬한 목이 아니라 얼굴 뒤에 숨은 열정과 단단한 내면, 세상을 바라보는 애정과 연민에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희망의 이유'라는 자서전에서 본 그의 어린 시절의 한 토막에서 나는 이 여성의 '오늘'이 어떻게 있게 됐는지를 볼 수 있었는데 그건 그녀가 만 두 살도 채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었다. 이 어린 소녀는 가족들과 바닷가에 갔다가 달팽이들을 물통에 담아 가지고 왔다. 그러나 어머니가 달팽이는 바다를 떠나면 죽는다고 얘기했을 때 제인은 '발작할 지경이 되었고' 그 때문에 온 집안 사람들은 하던 일을 즉시 멈추고 제인을 도와 달팽이들을 바다로 바삐 돌려보내야 했던 것이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그녀가 왜 아프리카 밀림 속으로 들어갔는지, 어떻게 유인원의 가족이 될 수 있었는지를 알게 됐다. 그리고 그건 무엇보다 그 자신의 심성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또한 누군가로부터 지지를 받는다는 것, 특히 어린 시절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 줬다.


중국 작가 루쉰이 아이 때 무한한 사랑을 베풀어 준 유모 할머니의 따스한 눈길을 어른이 된 뒤에도 늘 떠올렸듯이, 또 빨간 머리 고아 소녀 앤이 매슈 아저씨 남매를 만나 주변을 밝게 하는 소녀로, 숙녀로 성장했던 데에는 그 절대적인 사랑의 힘이 있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뿐이겠는가. 모든 사람은 결국 어리고 연약한 이들이다. 우리 모두에겐 제인의 엄마와 같은, 루쉰의 할머니, 앤의 아저씨와 같은 품이 필요한 것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반항적이지만 다정다감한 주인공인 홀든은 "나는 아이들이 놀고 있을 때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는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이라고 말한다. "다만 아이들이 혹시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게 할 것"이라고.


우리에겐 자신을 지켜보고 지지해 주는 최소한 한 사람이 있을까. 가족이든, 동료든, 어떤 공동체든 그런 존재가 있을까. 혹 그럴 가족이 없고, 동료가 없고, 세상에 단 한 명 손을 붙잡아 줄 이가 없는 이들에게 우리의 국가는 그런 역할을 하고 있을까. 68년을 맞는 광복절, 한 나라의 '건국'은 어느 한날 한순간에 완료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새삼 생각게 된다.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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