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괴담 다룬 '숨바꼭질', 변종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 다룬 '감기' 14일 개봉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같은 날(14일) 개봉하는 두 한국영화 '감기'와 '숨바꼭질'은 전혀 다른 소재로 우리에게 공포감을 안겨다준다. 하나는 어디선가 한 번은 들어본 적이 있는 도시괴담을, 또 하나는 현대인들이 흔히 걸리는 질병을 다룬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두 영화의 공통점이 있다. 귀신, 좀비, 외계생물체, 인류종말 등 공포영화에 흔히 쓰이는 재료없이도 두 영화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 '우리 집에 낯선 이가 살고 있다?' 도시괴담 다룬 '숨바꼭질'
영화 '숨바꼭질'은 여러 개의 도시괴담을 한 편으로 엮었다. '도시괴담'은 출처가 불분명하고, '카더라' 통신을 통해 많은 이들이 한 번 쯤은 들어봤다는 특징이 있다. '어떤 사람이 빈 집에 들어가 그 집 음식을 훔쳐 먹고, 밤이 되면 주인 몰래 침대 밑에서 잔다더라', '여자 혼자 사는 집 대문에 X자로 표시를 해놓고 나중에 찾아간다더라' 등 인터넷을 통해 확산된 괴담은 실제로 각종 국제 뉴스에서 비슷한 사건이 보도되면서 '실화'라는 강력한 타이틀을 얻게 됐다.
이 영화에서는 '초인종 괴담'과 '숨바꼭질 괴담'이 하나의 괴담으로 묶여서 표현됐다. '숨바꼭질'로 데뷔한 허정 감독은 "요즘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것은 귀신이 아니라, 피부에 와 닿는 현실적인 두려움"이라고 소재 선택의 이유를 밝혔다. 중산층의 자수성가한 사업가 '성수(손현주)'는 어느 날 형의 실종 소식을 듣는다. 형이 얼마 전까지 살았던 곳은 소도시 외곽의 낡은 아파트다. 그 곳을 기웃거리던 '성수'는 아파트 초인종 밑마다 동그라미, 세모, 네모와 숫자가 그려져있는 이상한 표시가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곧 자신의 아파트 문 밑에서도 이 표시를 발견하게 된다.
스릴러의 요소는 영화 곳곳 가득하다. 드러나지 않은 주인공과 형과의 관계, 낡은 아파트에 사는 정체불명의 모녀, 초인종 괴담을 증명이라도 해보이듯 사라지는 사람들 등. 여기에 '성수'의 지독한 결벽증 증상까지 더해지면서 관객들의 긴장감이 배가 된다. 특히 압권은 '성수'의 아파트 단지 안에서 발생한다. 중산층 이상이 사는 신도시의 대단지 아파트, 여기저기 가동되고 있는 CCTV와 보안키는 '내 집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여기게 한다. 그러나 아파트 지하주차장과 놀이터, 현관, 계단, 엘리베이터가 헬멧을 쓴 정체모를 범인에게 노출됐을 때의 공포는 상상을 초월한다. '우리 집에 누군가가 침입해온다면?'이라는 생각하기도 싫은 공포를 영화는 곳곳에서 자극한다.
후반부에 나타나는 '반전'은 두 괴담을 연결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로 보여진다. 그러나 공포와 범죄에 대처하는 주인공들의 태도는 납득하기 어렵다. 대도시 아파트 단지에서 일어나는 범죄에 대해 '성수'와 그 가족들은 상식적으로 대처하지 않음으로써 공감의 끈을 잃어버린다. 마지막 아파트 내부의 소동 부분에서도 여러가지 무리한 상황들이 이어진다. 다만 풍문으로 듣던 괴담의 실체를 스크린 상에서나마 직접 확인해보면서, 관객들은 '과연 우리 집은 안전한가'라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게 될 것이다.
◆ 바이러스와 전염, 현대인의 공포...'감기'
영화 '감기'는 말 그대로 '감기' 바이러스를 소재로 한다. 계절에 상관없이 우리가 흔히 앓게 되는 그 '감기' 말이다. 이미 우리는 많은 사람들을 죽음에까지 이르게 했던 2003년 '사스(SARS)'나 2009년 신종플루 사태를 겪었기 때문에 바이러스의 감염 공포를 경험으로 알고 있다. 이 같은 바이러스는 남녀노소, 지위나 계층의 구분없이 누구나 옮을 수 있다는 데 그 위험성이 내포돼있다. 영화 '감기'는 이 같은 공포를 극대화해 바이러스로 한 사회가 파괴되는 '재난영화'의 공식을 충실히 따른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지역은 경기도 분당이다. 고층 아파트 주거지가 밀집해있고, 도로 등 사회기반시설이 잘 정돈된 이곳에 변종 바이러스가 퍼진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들은 하루를 버티지 못한다. 마트에서, 백화점에서, 버스에서, 도로 한 가운데에서 기하급수적으로 바이러스는 퍼지고 사람들은 죽어나간다. 이에 정부에서는 2차 확산을 막기 위해 '도시 폐쇄'라는 사상 초유의 결정을 내린다. 고립된 도시에서, 병에 걸린 사람들은 짐승처럼 살처분당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폭동을 일으킨다.
영화 속에서 바이러스가 전염돼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공포다. 인구가 밀집돼있는 도시에서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과연 내가, 내 가족이 치사율 100%의 바이러스에 걸린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여기에 감염 가능성으로 인해 인간이 인간을 불신하게 되는 상황, 국가가 바이러스 감염자들을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등이 가세해 공포심이 극대화된다.
그러나 재난영화가 공포를 자아내는 이 같은 방식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하다. 재난으로 아수라장이 된 도시, 고립된 시민들, 생필품을 가져가려는 사람들로 난장판이 된 상점, 무능한 정부, 질서를 강요하며 폭력을 행사하는 공권력 등 재난영화의 클리셰는 일정한 패턴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재료들을 얼마나 유기적으로 요리해내느냐, 캐릭터들은 또 얼마나 설득력을 얻느냐가 영화의 관건이 된다.
'감기'는 재난영화에서 나올 수 있는 거의 모든 장면이 한 번씩 나온다. (그럼에도 종합운동장을 사람을 살처분하는 장소로 쓴 장면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여기다 후반부에는 휴머니즘과 애국주의까지 곁들이면서 인위적인 결말로 치닫는다. 더 문제는 '감기'에서 공감이 가는 '어른' 캐릭터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주인공들은 너무 헌신적이거나, 너무 이기적이고, '악당'의 캐릭터는 개연성이 없다. 다만 아역 박민하의 연기가 극의 생명력을 불어넣어주는 것은 확실하다.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