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정부가 중소·중견기업뿐만 아니라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과세까지 완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히자 중소기업계가 반발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31일 "정부가 대기업까지 일감 몰아주기 과세 완화 대상에 포함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당혹스럽다"며 "이를 완화할 경우 중소기업들에 돌아갈 몫이 다시 대기업의 이익으로 축적, 일감 몰아주기 법안의 효력이 크게 약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견기업 CEO A씨도 "중소·중견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과세를 완화해 달라고 건의했더니 은근슬쩍 대기업이 숟가락 얹기를 하고 있는 셈"이라며 "경제민주화 법안도 후퇴하는 것 아닌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일감 몰아주기는 당초 지난 정부의 경제민주화법 중 하나로, 중소기업계는 지난해 대선 때부터 주요 후보들에게 건의집을 제출하며 법 시행을 요구해 왔다. 하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 보니 국세청이 대상자로 추정한 1만명 중 70명을 제외한 나머지가 중소·중견기업인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부랴부랴 지난 10일 기재부, 중소기업청 등 관련기관에 중소기업기본법 상의 중소기업과 산업발전법 상의 중견기업을 일감 몰아주기 과세 대상에서 제외해 달라고 요청했다. 기재부 역시 중기중앙회의 주장에 공감, 최근 수차례 실무협의를 통해 세제안에 이를 반영키로 했다.
하지만 지난 27일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전국경제인연합회 제주하계포럼 폐막강연을 통해 "기업들이 일감 몰아주기 과세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며 중소기업 뿐 아니라 대기업도 완화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것.
당초 대기업 오너들의 부 대물림을 막기 위해 출발한 법안이 결국 힘을 잃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특히 같은 경제민주화 법안이라도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경우 실제로 활용되기보다는 상징적 의미가 큰 데 비해, 일감 몰아주기 과세는 실질적으로 효력을 발휘하는 만큼 꼭 지켜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기중앙회는 공식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민주화가 마무리 단계에 왔다"며 사실상 종결을 선언하고 투자와 경제 활성화에 나서고 있어 반대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다는 것.
대신 내달 5일 일감몰아주기 해소위원회를 개최, 일감 몰아주기 정책 진행상황을 공유하고 해소 방안을 집중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이 위원회는 지난 6월 경제민주화 추진상황 점검과 소통을 위해 7개 중소기업 단체와 업계·학계가 폭넓게 참여해 구성됐으며 향후 국회·정부와의 소통채널 역할을 수행한다.
이지은 기자 leezn@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