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한진주 기자] 서울시가 8일 공개한 ‘맑은 아파트 만들기’ 조사 결과는 그동안 아파트 관리가 얼마나 불투명하게 이뤄졌는지를 보여준다. 지난 3월 관리 혁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한 후 5개월 만에 나온 결과로 관리비를 쌈짓돈처럼 사용하거나 무자격업체가 부실시공한 사례들이 줄줄이 적발됐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200만원을 초과한 수의계약 남발이다. 공사·용역시 200만원 이상의 경우 경쟁 입찰 방법으로 시행해야하지만 A단지는 총 13건의 공사(1억7700만원)를 수의계약했다. 뿐만 아니라 계약 금액이 1200만원인 하수관 교체공사 시 배관 단가를 과다 계상, 186만7000원을 과다 지급했다. 또한 계약 금액이 770만원인 난방배관 교체 공사에도 지하 작업 출입구 18개 중 14개만 시공하고 재질도 합판으로 변경해 부실시공하고 270만4000원을 과다 지급했다.
입찰참가 자격이 없는 무자격업체와의 계약 사례도 눈에 띈다. 소방시설 보수공사는 자격업체만이 시공가능 함에도 불구하고 B단지에서는 입찰과정에서 면허를 보유한 3개 업체 선정을 무효 처리, 무자격업체와 소방시설 보수공사 수의계약을 맺었다. 부실공사로 이어져 관리비 낭비를 불러온 경우다.
공사비를 과다 산정한 사례도 많다. C단지는 방수·재도장 공사 입찰과정에서 5~6개 업체가 담합(4건, 10억3600만원)한 사실이 드러났다. 가격을 내정해놓고 낙찰해 이 회사가 다른 아파트에 시공한 가격보다 1억1000만원을 더 지불했다.
D단지는 입찰기준을 변경해 4개 회사에만 입찰자격을 부여하고 그중 특정회사와 22억7000만원에 계약했는데 현장 확인 결과 4억8700만원이 과다 계상됐다.
공사물량을 과다로 산출해 관리비가 새어나간 경우도 있다. E단지는 모 건설사가 제시한 주차장 증설공사에 아스콘 1170톤을 반입하겠다고 기재하고는 실제 현장에서는 1031톤만 사용해 총 2154만원의 공사비를 과다 지급했다.
주민들이 내는 관리비를 제멋대로 운영해 주민들에게 부담이 전가된 사례도 대거 적발됐다. 아파트 공용시설 유지관리를 위해서는 장기수선계획을 세워 소유자들에게 장기수선충당금을 적립해 시설보수공사를 해야 하는데 장기수선충당금과 관리비를 구분하지 않고 사용해 거주자들의 부담이 늘어난 경우다.
F단지는 장기수선계획에 있는 조경시설물 교체공사(9100만원)와 쓰레기 집하장 및 입대의 회의실 CCTV·방송설비 설치비용(8200만원)을 관리비(수선유지비 항목)로 부과해 거주자에게 부담을 떠넘겼다.
G단지에서는 주차시설충당금을 관리비 항목에 포함해 거주자(세입자)로부터 10억원을 적립했다. 이 단지는 장기수선충당금으로 써야하는 도로 아스콘 포장공사에 관리비 6억4800만원을 쓰고 나머지 4억800만원도 장기수선충당금으로 적립했다.
장기수선계획도 형식적으로만 수립·조정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기수선계획은 아파트 준공 시 사업주체가 수립하고 이후 3년마다 입주자대표회의가 조정하게 돼 있다. 장기수선충당금 적립이 계획적으로 이뤄지지 않아 적기에 아파트를 수선하지 못해 건물이 노후화되고 장기수선충당금이 부족해 관리비로 부과했다.
이밖에 입주자대표회의 내 이권다툼도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관리주체의 권한을 침범하고 공사 수의계약 및 관리비 전용 등을 저지르고 있었다. 입주자대표회의 내 다수파와 소수파간 분쟁, 입주자대표회의와 선거관리위원회 분쟁으로 아파트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던 배경이다.
한진주 기자 truepea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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