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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詩]박주택의 '엉겅퀴꽃 피는 저녁' 중에서

시계아이콘00분 46초 소요

(......)/곰삭는 새우젓 냄새가 마른 똥 냄새를 풍기고/깃발이 찢겨진 배가 시커먼 개펄에/묻혀만 있을 때 추억의 문장인 소금도 시궁창 물에 섞여/자신의 존재를 잃은 채 노란 거품을 문다/물의 감옥인 소래. 구경꾼 생의 배경이 되는 개펄/엉겅퀴꽃 피는 저녁, 그 꽃의 가시가/찔러대는 흉조의 밤,(.....)


■ 소래(蘇來) 포구는 서울에서 오글거리던 사람에게는 뻘일 망정 바다냄새를 맡게 하는 비상구 같은 곳이다. 모텔촌의 번들거림과 폐허의 잡답(雜踏)을 눈감아 주며 짐짓 낭만의 기운을 돋울 수도 있으련만, 박주택은 예민한 감관으로 포구의 더러운 구석을 찍어 낸다. 시궁창에 처박힌 배, 바람에 흔들리는 이름 없는 잡초, 똥 냄새를 풍기는 새우젓, 노란 거품을 문 시궁창의 소금, 뻘 사이에 갇힌 검은 물, 사라진 협궤열차 대신 달리는 고속도로, 중국산 농어, 고기들이 죽은 물에 별들이 썩어 되비쳐 올라가는 풍경까지, 리얼하고 섬뜩한데, 그사이에 피어난 엉겅퀴꽃이 의미심장해진다. 이 식물의 잎과 줄기를 짓찧어 상처에 붙이면 피가 엉긴다. 엉겅퀴라는 얄궂은 이름은 '엉기다'에서 온 듯하다. 피가 굳는 모양과 검게 말라가는 소래는 어쩌면 닮지 않았는가. 포구 전체가 하나의 상처로 욱신거릴 때 이 작은 꽃 한 송이가 피어, 죽어가는 물고기와 소금과 새우젓과 배와 잡초까지 다시 살려 내는 것은 아닌가. 현장의 죽음과, 이름의 소생(蘇生)이 엉겅퀴꽃 한 송이 사이에서 오래된 갈등을 풀 수도 있겠으나, 시인은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는다. 엉겅퀴마저 치유자가 아니라 상처 유발자로 피어나는, 음습한 포구의 살풍경을 카메라 렌즈 속처럼 들여다본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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