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어제 '지방공약 가계부'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에 보고했다. 모두 105개 공약을 이행하는 데 계속사업 40조원, 신규사업 84조원 등 총 124조원의 예산이 소요된다고 한다. 지난 5월 발표한 중앙정부 공약 가계부 134조8000억원과는 별개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타당성이 부족하다고 나온 것은 수정해서라도 꼭 추진하겠다"며 공약 이행을 강조했다고 한다.
정부가 지방공약 이행을 다짐한 것은 당연하다. 선거 때 지역 표심을 얻기 위해 공약을 내걸고, 정권을 잡은 뒤에 언제 그랬냐는 듯 외면해서는 안 될 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124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소요 재원이다. 정부는 사업 대부분을 가급적 민간 투자사업으로 추진해 중앙정부의 재정부담을 최소화할 방침이라고 한다. 고육책인 셈이다.
하지만 지금의 경제 여건을 감안할 때 정부 생각대로 될지 의문이다. 성장률이 8분기 연속 0%대를 기록할 정도로 경제는 침체 상태다. 경기 둔화의 여파로 세금은 지난 4월 말까지 8조7000억원이나 덜 걷혔다. 나라 곳간이 비어 중앙정부 공약도 실천하기 어려울 판이다. 민자 사업의 핵심축이 돼야 할 건설업계도 부동산 경기 침체로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다. 불황으로 민자시장은 사실상 고사 상태다.
지방공약은 사업의 경제성과 타당성을 면밀하게 따져 보고 제시했다기보다는 지역 민심을 잡기 위해 내놓은 선심성 사업이 적지 않다. 고속화철도, 연륙교 등 대형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이 대부분으로 타당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난 것도 수두룩하다. 공약이라 해서 그런 타당성 없는 사업까지 무조건 이행하라는 것이 국민의 뜻은 아닐 것이다. 중앙공약 이행을 위해 SOC 예산 11조6000억원을 삭감하겠다는 방침과도 상충된다.
물론 지방공약은 국토의 균형발전과 주민 편익 등의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공약 사업의 타당성, 지역의 특성, 재원 조달의 가능성 등을 두루 감안해 사업 추진 여부와 우선순위를 결정해야 한다. 공약이라는 이유만으로 무리한 사업을 일단 시작하고 본다거나, 내년 지방선거를 의식한 정치적 판단은 안 된다. 정치권의 지역개발 논리에 밀려 건설했다가 애물단지가 된 무안, 양양, 청주 국제공항 등은 반면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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