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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비룡과 항용

시계아이콘읽는 시간45초

옛날 옛적 깊은 산 큰 못에 이무기가 살고 있었지. 이무기의 꿈은 용이 되어 하늘을 호령하는 것. 그는 온종일 연못 바닥에 엎드려 자기성찰에 골몰했지. 뜻을 펼치려면 먼저 그릇을 키워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야. 수십 년이 걸렸다나, 수백 년이 걸렸다나, 몸과 마음을 갈고닦은 이무기는 세상에 나가기로 결심했지. 그러나 곧 나가지는 못했어. 잠룡(潛龍)은 물용(勿用)인 거지.


일 년에 한 번 큰 몸을 일으켜 머리를 물 밖으로 내밀어 바깥을 살핀 거야.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 세상이 받아줄 준비가 안 됐는데 섣불리 나섰다 낭패 보기 십상이거든. 때가 아니라고 생각되면 미련 없이 몸을 접고 못 속에 웅크려 기다리기 수십 년이라나, 수백 년이라나.

보름달이 뜬 어느 날 이무기가 용이 되어 못 밖으로 나오는 풍경은 아주 장관이었지. 연못이 부글부글 끓고 밤인데도 무지개가 떴다나 어쨌다나. 세상에 나온 용이 처음으로 한 일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었어. 아무리 좋은 일도 혼자는 못하는 법이니까. 그러나 사람도 사람 나름, 배포가 맞는 큰사람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하더군.


사람을 얻은 뒤엔 열심히 일을 했다네. 온종일 땀 흘려 일한 뒤 석양을 등지고 골똘히 사색에 잠겨 하루를 반성하는 그의 모습을 본 사람이 적지 않았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배짱이 맞는 이들과 함께 땀 흘린 대가는 언젠가 찾아오기 마련, 드디어 뜻을 이루기 일보직전. 그렇지만 그는 냉큼 취하지 않고 숙고에 숙고를 거듭했다 하는데, 그 깊은 속을 우리 같은 범인이 어찌 알겠는가.

결국 뜻을 이루어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는 그를 세상 사람들은 비룡재천(飛龍在天)이라 일컬었지.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로 기세가 등등하고 위엄이 하늘을 찌른다는 말이 시중에 파다했어. 그리고는 한동안 그의 소식을 못 들었는데…. 최근 그가 아주 망신창이가 되어버렸다는 거야. 초췌한 몰골로 시중을 떠돈다나 어쩐다나.


글 꽤나 읽은 한 친구는 이를 두고 자칫 방심하면 세상사 한 방에 훅 간다며 하는 말이 항용유회(亢龍有悔)라나 뭐라나.


<치우(恥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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