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유찰 줄이고 시간 단축 위해 법 개정
업계 "감정평가액 상승·시장 양극화 우려"
[아시아경제 이민찬 기자]정부가 부동산 경매 유찰을 줄이고 낙찰을 앞당기기 위해 첫 경매 최저가격을 20% 낮추도록 법 개정에 나섰다. 경매업계에서는 첫 경매입찰에서 주인을 찾는 비율이 높아질 것이란 시각과 시세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감정평가를 막을 방법이 없고 자칫 경매 참여자들이 손해를 볼 수도 있다는 우려를 동시에 내놓고 있다.
법무부는 부동산 경매의 낙찰가격 하한선을 현행보다 20%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한 민사집행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6월까지 의견수렴을 진행 중이다. 개정안이 확정돼 국회까지 통과하면 앞으로 첫 경매의 낙찰 하한가인 '최저매각가격'은 '감정평가액의 20%를 뺀 액수'로 낮춰진다.
정부가 이처럼 법개정에 나선 것은 경매 매물의 낙찰 가격이 높아 유찰이 거듭되면서 경매 절차가 길어지는 폐단을 막기 위해서다. 현재 부동산 경매에서 첫 기일의 낙찰률(낙찰건수/경매건수)은 12.8%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와 유사한 경매 절차를 갖춘 일본의 경우 1회 기일 낙찰률이 약 90%에 이른다.
경매정보업체 부동산태인 정대홍 팀장은 "부동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1회차 경매에는 입찰을 하지 않는 게 관례처럼 돼 버렸다"면서 "첫 경매 최저가가 20% 낮아지면 경매 인기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영섭 법무부 법무심의관은 "법 개정으로 첫 매각기일 낙찰률이 약 50%까지 오르고 경매 기간도 1개월 정도 단축될 것"이라며 "이를 통해 채무자는 지연이자 부담을 줄일 수 있고 채권자도 신속하게 채권을 회수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시세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감정평가액은 그대로 둔 채 경매 최저가만 낮추는 것은 미봉책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또 물건에 따라 경매 시장이 양극화될 수도 있으며 감정평가액이 오히려 상승하는 등의 부작용이 초래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5월 3회차 경매에서 78.05%(7억8050만원)의 낙찰가율을 기록하며 주인을 찾은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 76㎡의 최초 감정평가액은 10억원이었다. 이 물건의 감정평가가 실시된 감정기일은 2011년 9월이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이 당시 은마아파트의 매매 일반 평균가격은 9억1000만원이었다. 감정가와 무려 9000만원의 차이가 났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경매 절차와 함께 채권회수에 속도가 붙어 경매 시장에 훈풍이 불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는 한편, 물건에 따른 경매 양극화와 감정평가액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드러냈다.
박합수 국민은행 부동산팀장은 "첫 경매 입찰가격이 20% 낮아지면 경매 절차에 속도가 붙고 금융권과 채권자의 채권 회수도 빨라지는 긍정적인 영향이 있다"면서도 "하지만 향후 제도가 정착되면 오히려 감정평가액만 더욱 상승해 이 같은 대책의 효과를 반감시키는 등의 부작용을 낳을 수 있어서 적절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경매에 적용되는 감정평가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수연 제주대 교수는 "경매 최저가를 20% 낮추는 건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면서 "공시가격과 시세는 당연히 차이가 나는 데 이를 경매 감정평가에 활용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시장가격을 반영할 수 있는 감정평가가 선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민찬 기자 lee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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