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데스크칼럼] 디지털 감시, '선·악'의 두 얼굴

시계아이콘01분 33초 소요

[데스크칼럼] 디지털 감시, '선·악'의 두 얼굴
AD

영악한 할리우드 영화감독이라면 ‘번뜩’였을 게다. 어쩌면 이미 '시나리오'를 머릿속에 그렸을지 모른다. 보스턴 마라톤 테러는 그만큼 충격이었다. 세계적 마라톤 축제의 한복판에서, 테러 무기로는 생소한 압력솥이 터져, 아빠의 완주를 응원하던 8살 꼬마(130여명의 사상)가 사망하는, 극적인 스토리가 촘촘히 엮였다. '테러범 형제' 타메를란ㆍ조하르 차르나예프가 '모범시민'이었다는 지인들의 증언도 섬뜩하다. '선을 가장한 악의 얼굴'은 일상에선 그렇게 환한 미소를 짓는다. 현실은 때론 영화보다 잔인한 법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테러 충격에도 의연한 미 국민들을 영웅으로 치켜세웠지만 무엇보다 테크놀로지의 공이 컸다. 선혈이 낭자한 아비규환을 실시간으로 전한 트위터, 생사를 넘나드는 일촉즉발의 상황을 가족ㆍ친지들에게 실어 나른 휴대폰 문자 메시지. 어디 그뿐인가.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테러 현장 동영상은 인터넷을 뒤덮었고 수사 제보로 이어졌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시민들의 제보 자료에 힘입어 사고 현장 통화 기록과 감시카메라(CCTV)를 분석하며 포위망을 좁혀갔다. 이 과정에서 FBI가 분석한 영상 데이터는 10TB(테라바이트). 미국 의회도서관 전체 자료와 맞먹는 방대한 양이다. 사진과 동영상, 통화 자료의 '조각 맞추기'를 통해 테러 상황은 재구성됐고 나흘만에 범인은 체포됐다. 수많은 데이터에서 '가치'를 찾아내는 '빅 데이터(Big Data)'의 쾌거다. 기업(정부)이 제품 생산 과정(용의자 추적)에 소비자(대중)를 참여시켜 양질의 결과물을 도출하는 '크라우드 소싱'(Crowd Sourcing)의 재발견이기도 하다.


여론의 평가는 후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경찰ㆍ시민, 그리고 테크놀로지가 보스턴 테러 수사에 일조했다'는 기사에서 시민과 네티즌의 감시, 스마트폰과 CCTV가 범인을 찾는 데 기여했다고 전했다. USA투데이는 '하이테크 기기가 보스턴 수사를 어떻게 도왔나'라는 부제의 기사를 통해 첩보영화를 방불케하는 디지털 기술들을 조명했다. 자경단(vigilante)과 디지털(Digital)을 합친 디지털감시단(Digilante)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하늘에는 위성, 거리에는 스마트폰과 CCTV, 그리고 실시간 정보를 공유하는 SNS까지, 24시간 물샐틈없는 '디지털감시'의 서막이다.

내친 김에 '감시의 눈'을 확대하자는 주장이 잇따른다. 보수 강경파 피터 킹 하원의원(공화당)은 "(수사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동영상을 분석했는지 모르지만 앞으로 CCTV가 더 많이 필요해졌다"고 역설했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도 "5년 내 뉴욕의 모든 곳에 CCTV를 설치하겠다"고 선언했다.


악에 대한 테크놀로지의 강력한 응징. 그런데 안도의 한숨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뭘까. '디지털감시'라는 어감이 주는 으스스함이다. 범죄자가 아니면 무슨 걱정이냐고 타박하지 마라. 집단의 분노가 테크놀로지와 맞물리면 총구는 되레 선량한 시민을 향할 수 있다.


고교생 살라 에딘 바르훔(17)은 상상이나 했을까. 자고나니 보스턴 폭발 테러범으로 몰려 '뉴욕 포스트' 1면에 사진이 실리면서 생명의 위협을 받았으니 말이다. 그의 고통을 '개인의 불운'으로 덮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디지털감시 시대, 선량한 피해자는 지구촌 어디서나 존재할 수밖에 없다.


조지오웰은 소설 '1984'에서 시민들이 권력에 감시받는 빅브러더 세상을 성토했다. 영화 '트루먼 쇼'(1998년)는 집단의 사생활 엿보기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아날로그 시대의 우울한 예언은 디지털 시대에 여전히 유효하다.


정의를 빙자한 권력의 시민 감시, 이성을 잃은 집단의 엿보기는 또 다른 악이다. 공공의 정의를 지키는 것만큼 개인의 삶을 보호하는 것은 퇴색될 수 없는 사회적 가치다.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는 공포 영화 제목은 단연코 현실이다. 거듭 말하지만, 현실은 영화보다 잔인하다.






이정일 산업2부장 jaylee@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12.0209:29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병원 다니는 아빠 때문에 아이들이 맛있는 걸 못 먹어서…." 지난달 14일 한 사기 피해자 커뮤니티에 올라 온 글이다. 글 게시자는 4000만원 넘는 돈을 부업 사기로 잃었다고 하소연했다. 숨어 있던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나타나 함께 울분을 토했다. "집을 부동산에 내놨어요." "삶의 여유를 위해 시도한 건데." 지난달부터 만난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아이 학원비에 보태고자, 부족한 월급을 메우고자

  • 25.12.0206:30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를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 보려고 한다. 전문가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확산하는 부업 사기를 두고 플랫폼들이 사회적 책임을 갖고 게시물에 사기 위험을 경고하는 문구를 추가

  • 25.12.0112:44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법 허점 악용한 범죄 점점 늘어"팀 미션 사기 등 부업 사기는 투자·일반 사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구제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업 사기도 명확히 전기통신금융사기(보이스피싱)의 한 유형이고 피해자는 구제 대상에 포함되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합니다."(올해 11월6일 오OO씨의 국민동의 청원 내용) 보이스피싱 방지 및 피해 복구를 위해 마련된 법이 정작 부업 사기 등 온라인 사기에는 속수무책인 상황이 반복되

  • 25.12.0112:44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나날이 진화하는 범죄, 미진한 경찰 수사에 피해자들 선택권 사라져 조모씨(33·여)는 지난 5월6일 여행사 부업 사기로 2100만원을 잃었다. 사기를 신

  • 25.12.0111:55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기자가 직접 문의해보니"안녕하세요, 부업에 관심 있나요?" 지난달 28일 본지 기자의 카카오톡으로 한 연락이 왔다.기자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1.2709:34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1월 24일)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한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는 호소력에 한계가 분명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연말 연초에 내부에서 장 대표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 전

  • 25.11.1809:52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지난 7월 내란특검팀에 의해 재구속된 윤석열 전 대통령은 한동안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특검의 구인 시도에도 강하게 버티며 16차례 정도 출석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의 태도가 변한 것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이 증인으로 나온 지난달 30일 이후이다. 윤 전 대통령은 법정에 나와 직접

  • 25.11.0614:16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1월 5일) 소종섭 : 이 얘기부터 좀 해볼까요? 윤석열 전 대통령 얘기, 최근 계속해서 보도가 좀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군의 날 행사 마치고 나서 장군들과 관저에서 폭탄주를 돌렸다, 그 과정에서 또 여러 가지 얘기를 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강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