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버틴다는 SK 야구. 이번엔 다르다. 모처럼 강한 송곳니를 심었다. 새 외국인 투수 조조 레이예스다.
레이예스는 10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2013 프로야구 넥센과 홈경기에 선발 등판, 9이닝 2피안타 8탈삼진 2사사구 무실점의 역투를 펼쳤다. 올 시즌 리그 첫 완봉승의 주인공으로 거듭나며 이만수 감독의 시름을 날려버렸다. 호투를 선보인 건 처음이 아니다. 지난 두 차례 등판에서도 충분히 위력을 과시했다. 3월 30일 문학 LG전에서 5이닝 퍼펙트를 기록했고, 지난 4일 잠실 두산전에서 7이닝을 3실점으로 틀어막았다.
투구 내용은 이날 더 훌륭했다. 선두타자 출루를 7회 한 차례 내줬을 뿐 시종일관 넥센 타선을 압도했다. 가장 눈에 띈 구종은 투심 패스트볼. 시속 140km대의 속도에 스트라이크존 바깥으로 미끄러지듯 벗어나 오른손 타자들의 헛스윙과 땅볼을 효과적으로 유도했다. 프로야구와 메이저리그의 수준 차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메이저리그에서 레이예스의 투심 패스트볼 구종가치(Pitch Value)는 -16.6에 불과했다. 올해 구속이 조금 빨라졌으나 그만큼 국내 타자들의 강속구 대처가 미흡하다고 할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는 “레이예스의 투심 패스트볼은 국내 최고의 움직임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며 “오른손타자들이 포심 패스트볼에서 몸 쪽을 파고든단 느낌을 받는단 건 이 때문일 것”이라고 전했다. 레이예스는 다른 무기로도 재미를 봤다. 슬라이더다. 최고 구속 138km의 빠른 움직임을 앞세워 볼카운트 싸움에서 가볍게 우위를 점했다. 그 덕에 이날 투구 수는 완봉에도 102개밖에 되지 않았다.
레이예스의 선전은 신구 조화를 내건 SK에게 큰 힘이다. 큰 부담 없이 다양한 실험을 강행할 수 있는 까닭. 그 사이 쌓이는 젊은 피들의 경험은 두터운 선수층의 근간이 될 수 있다. 불펜에게 제공되는 휴식도 빼놓을 수 없다. SK는 그간 ‘벌떼야구’로 불릴 정도로 많은 투수들이 마운드에 올랐다. 이는 SK의 완봉승 간격만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레이예스에 앞서 기록을 달성한 건 2010년 6월 20일 문학 KIA전에서의 김광현이다. 무려 1025일 만에 기록이 다시 등장한 셈. SK 외국인 투수로 범위를 좁히면 간격은 더 넓어진다. 앞서 완봉승을 뽐낸 건 2003년 5월 9일 문학 KIA전에서의 트래비스 스미스다. 정확히 3624일 전의 일이었다. 좀처럼 외국인투수로 재미를 보지 못했던 SK가 강한 송곳니를 심었다고 자부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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