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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0…숫자로 본 위기의 '개성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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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은정 기자] 남북협력의 상징, 개성공단이 2003년 공단 착공식 후 10년 만에 최대 위기에 몰렸다. 북한이 3일부터 개성공단으로의 진입을 막은 채 개성공단 근로자의 남측 귀환만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성공단 근로자의 남측으로의 귀환만 허용한 지 이틀째인 4일 귀환 예정 근로자는 222명이다. 개성공단으로 가는 길은 막혔지만 이날 새벽부터 남북출입사무소에서 혹시 모를 출경을 기다리는 근로자들은 여전히 눈에 띈다. 주요 숫자를 통해 지난 10년간 개성공단의 수난사를 돌아본다.

◆1= 개성공단 공장 설립 후 첫 생산제품은 시범단지에 입주한 리빙아트의 통일냄비였다. 2004년 12월15일 1000세트가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 판매를 시작한 지 불과 1시간이 못돼 매진됐다. 리빙아트 개성공장은 첫 제품 생산 후 1여년 후 화재가 발생, 현재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3=이번을 포함해 지난 10여년간 개성공단의 통행금지 조치가 이뤄진 적은 크게 3차례였다. 첫 육로통행 차단은 2009년. 북한은 당시 한·미 연합 키 리졸브연습(2009년 3월9∼20일)을 빌미로 군 통신선을 끊고 세 차례에 걸쳐 육로통행을 차단했다.
우리 정부의 조치로 통행이 제한된 적도 있다. 바로 2010년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에 따른 체류 국민 신변 보호 차원에서 체류 인원을 제한했다.

◆10= 개성공단의 자리는 과거 북한 2군단 기지가 있던 곳이다. 이 군부대가 물러난 뒤 들어선 곳에 세워진 개성공단은 2003년 착공식과 함께 그동안 남북 협력의 상징이자, 남북관계의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다.


◆123= 현재 개성공단에 입주한 우리 기업은 총 123개사다. 2004년 12월15일 개성공단 내에서 첫 제품이 생산된 이후 2006년 10월31일 시범단지 23개 입주기업 모두가 완전 가동에 들어갔다. 2009년 말 개성공단 입주기업은 117개로 늘었고 2011년 8월 이후 123개 기업이 생산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개성공단이 첫 생산품을 출하한 뒤 지난 1월까지의 누적 생산량은 20억1703만달러 규모다.


◆136= 개성공단 사업의 위기 중 하나는 2009년 현대아산 직원의 억류 때 였다.
2009년 3월 30일 북한은 개성공단 내 현대아산 숙소 관리 담당 직원을 '탈북책동 및 체제비난' 혐의로 억류, 같은해 8월13일 석방했다.


◆53000= 현재 개성공단에 근무 중인 북측 근로자 5만3000여명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근로자 1명당 월평균 144달러의 임금을 받고 있다. 사업 첫해 개성공단 북측 근로자의 임금은 57.5달러였다. 지난해 북측 근로자 규모와 임금을 토대로 북한은 개성공단을 통해 연간 9000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은정 기자 mybang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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