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터넷에 난데없이 '의리' 바람이 불고 있다. 네티즌이 의리로 치켜 세우는 영화는 지난 14일 개봉한 러시아 액션 영화 '영웅 - 샐러멘더의 비밀(이하 영웅)'이다.
이 영화에 출연한 한국 배우 김보성이 평소 '의리'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 때문인지 많은 네티즌들이 "의리로 영화를 사수하자"는 댓글을 쏟아 내고 있다. 덕분에 한 포털의 영화 코너에서 이 영화는 10점 만점에 9.55점이라는 높은 평점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영화 평론가들은 이 영화에 2.94점이라는 낮은 점수를 줬다. 최근 개봉한 영화 '신세계'나 '파파로티'도 네티즌 평점이 전문가 평점보다 1~2점 높지만 '영웅'같이 극단적인 점수차는 아니다.
여기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재미없는 영화를 보게 만들겠다는 네티즌들의 장난이 숨어 있다. 실제로 장난에 '낚여' 영화를 본 후 속았다며 분노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네티즌들은 "다 알고 장난치는 건데 뭘 그러느냐"며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분위기다.
'영웅'에 오버랩 되는 영화가 있다. 2004년 개봉한 액션 영화 '클레멘타인'이다. 이 영화 역시 배우들의 서툰 연기와 조악한 연출로 혹평을 들었다. 하지만 네티즌은 이 영화에 "금세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최고의 대작" 같은 칭찬을 퍼부었고 포털에서 평점도 높았다.
이렇게 시작된 영화 평점 조작은 여러 부작용을 낳았다. 한 극우성향 커뮤니티 회원들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영화화한 '26년'에 의도적인 평점 깎기를 시도하기도 했다.
포털의 영화 평점은 더 이상 신뢰의 척도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됐다. 여론몰이만 성공하면 얼마든지 조작 가능한 시스템으로 전락했다. 올바른 인터넷 윤리도, 이를 개선할 포털의 개선책도 보이지 않고 있다. 영웅에 대한 온라인 반응을 지켜보면서 입맛이 쓴 이유다.
의리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지켜야 할 바른 도리'다. 그렇다면 인터넷에서 '의리'는 올바른 정보를 전달해 주는 것이다. 영웅을 떠받드는 이들은 의리 타령을 하면서 정작 네티즌 사이에 의리는 지키지 못한 셈이다.
영화진흥위원회 발권통계(KOBIS)에 따르면 이 영화의 개봉 7일차 누적관객은 5488명, 매출액은 4100만원이다. 평점을 준 네티즌 수가 영화누적관객보다 4000명이나 더 많다. 인터넷에서 강조했던 의리가 막상 극장으로 발걸음을 향하게 하진 못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