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원의 기초연금을 지급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이 변질되고 있다. 재원 문제라는 암초에 부닥친 탓이다. 우여곡절 끝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국민연금의 두 구성부분인 '가입자별 개인소득에 연동되는 비례급여'와 '가입자 전체 평균소득에 연동되는 균등급여' 중 후자인 균등급여를 기초연금의 일부로 간주하는 방안을 검토하기에 이르렀다. 국민연금 비가입 노인에게는 월 20만원을 지급하지만 국민연금 가입 노인에게는 균등급여가 월 20만원에 미달하는 만큼의 차액만 지급한다는 것이다.
이는 궁여지책이다. 재원 소요액이 공약을 내걸 때 어림짐작한 금액보다 훨씬 큼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억지로 끼워맞추기를 하는 것이다. 얼핏 기초노령연금을 기초연금으로 확대해 국민연금과 통합적으로 운용한다는 명분에도 맞고 '노인 1인당 월 20만원'이라는 금액 약속도 지키는 것 같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가입자의 금전적 기여를 토대로 운영되는 사회보험이고, 기초노령연금은 가입자의 기여를 전제하지 않는 공공부조다. 인수위 안은 이 두 가지를 상계처리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런 방식은 선별적 공적 노인부조인 기초노령연금을 보편적 노인복지 급여인 기초연금으로 확대 개편한다는 박 당선인 본인의 정책방침에도 배치된다. 애초부터 소득수준별 차등지급으로 인해 보편성을 갖지 못한 채 시작된다. 시간이 흐르면 노인 중 국민연금 가입자 비중이 확대되고 평균 수급액이 늘어남에 따라 기초연금 수급자 수가 갈수록 줄어들게 된다. 결국에는 기초연금이 일부 빈곤층 노인들만을 위한 공공부조로 축소ㆍ환원되고 말 것이다.
이런 자충적 해법으로 가닥이 잡힌 것은 박 당선인의 중요한 공약 하나가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게 됐음을 의미한다. 인수위의 최종안은 이번 주에 발표될 예정인 새 정부의 국정과제 보고서에 담길 것으로 보인다. 그 내용은 그동안 인수위와 여당에서 흘러나온 얘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대로 확정되면 '박근혜표 복지'는 시작부터 불신의 요소를 안게 된다. 지난해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국민적 공감대가 확인된 '복지국가로의 전환'이 새 정부에서 가능하겠느냐고 많은 국민이 생각하게 될 것이다.
박 당선인은 아버지 박정희 전(前) 대통령이 '복지국가의 꿈'을 갖고 있었고 그 꿈을 자신이 실현하려 한다는 말을 한 바 있다. 이것이 진정에서 나온 말이라면 무엇보다 먼저 노인복지에 관한 공약부터 완전하게 실천해야 한다. 젊을 때 열심히 일해서 자식들도 길러내고 경제발전에도 기여한 뒤 은퇴한 시니어들에게 한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하는 모습은 보기에 민망하다. 노인복지는 복지국가의 시작이자 끝이다. 기초생활비에도 미달하는 월 20만원도 다 지급하지 못해 국민연금 가입자와 비가입자, 고소득자와 중저소득자를 구분해 차등 감액할 궁리를 꼭 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재정부담이 걱정된다면 과다ㆍ낭비요소가 있는 국방비ㆍ토건사업비ㆍ대기업지원비 등을 우선 줄이고, 그래도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국민에게 양해를 구하고 세금을 더 많이 걷는 증세 조치를 취해야 한다. 필요한 복지재원 확충을 위한 증세에 대해서는 야당도 굳이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일반 국민도 예전보다는 증세에 우호적이다. OECD도 고령화 추세에 대응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세금과 사회보장기여금 합계액의 비율, 즉 국민부담률을 더 높일 것을 한국 정부에 권고한 바 있다. 국가재정의 구성과 운용을 복지 중심으로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고서는 복지국가의 꿈을 이룰 수 없다.
이주명 논설위원 cm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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