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서울 살던 큰 딸 가족이 필자의 집으로 이사를 왔다. 같이 사는 게 어떠느냐는 권유를 했는데 두 내외가 썰렁하게 사는 것을 안쓰럽게 생각하고 사위와 딸이 흔쾌하게 동의해서 성사됐다.
그 덕에 우리 집은 사람사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손주 재롱 보는 재미도 크다.
경기도 용인에 소재한 아파트에 정착한 것은 2004년 봄이다. 그때만 해도 큰 평형 아파트를 너도나도 선호하던 때여서 장래에 크게 횡재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했다. 40평형대에서 60평형대로 옮긴 이들과 비슷한 생각이었다. 이제 이런 대형 평형의 집은 애물단지다.
주위를 둘러보면 본의 아니게 쓸데없이 큰 평형의 집을 소유해 애를 먹고 있는 경우가 많다. 처분하고 싶어도 팔리지는 않고 관리하기도 힘들다. 아이러니하게도 큰 평형일수록 실제 거주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거의 대부분 부부만 산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바로 공동주택 내부 구조를 변경해 2세대가 독립적으로 살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다. 어차피 활용하지 않는 공간을 큰 부담 없이 주택구조를 변경해 임대할 수 있다면 많은 이들이 시도할 수 있다. 임대수입도 생기고 관리비도 줄일 수 있어서다. 공동주택이 임대주택으로서 활용되는 효과도 생긴다.
차기 정부는 철도부지 위에 인공지반을 구축하면서까지 임대주택을 지으려 하고 있다. 그에 비하면 공동주택 세대 분리는 택지비와 기반시설 설치부담이 없이 임대수요를 어느 정도 흡수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하우스푸어의 위기를 타개할 방법도 될 수 있다.
정부는 지난해 '세대구분형 멀티홈 아파트 건설기준'을 마련해 이 같은 세대 분리형 주택을 활성화하도록 했다. 신규 건설 아파트뿐만 아니라 준공된 아파트도 적용이 가능토록 하면서 규제도 대폭 완화하고 거주세대의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토록 설계기준까지 보완했다.
이로 인해 구조변경 가능한 아파트의 세대 규모 제한이 폐지되고 임차가구의 면적상한이 사라졌다. 임차가구에 대한 독립된 현관과 1개 이상의 침실, 개별 부엌 및 욕실 설치, 별도의 전기ㆍ수도ㆍ가스 개량기 설치도 가능해졌다. 주차장 등 부대ㆍ복리시설의 설치의무도 완화했다. 기존 아파트는 리모델링 행위허가를 통해 이런 세대 분리를 가능하게 했다. 제도의 남용에 따른 시설물 안전 및 주거여건 악화를 막기 위해 어쩔수 없는 결과로 보인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이다. 리모델링 행위 허가를 받으려면 같은 동 입주자들의 동의가 필요하다. 세대 분리를 하기 위해 구조 변경을 시도하려는 소유자가 '행위허가 조건'을 충족시키기 힘들다는 결론이 자연스레 나온다. 개인이 추진하기에는 벽이 높은 셈이다.
따라서 양호한 주거여건 확보를 위해 단지별 또는 동별 구조변경 가능세대의 총량을 정하고 개별 세대는 건설기준에 맞게 시공하도록 보완할 필요가 있다. 지자체에 사전ㆍ사후 승인을 받도록 해서 안전 등을 점검할 수 있도록 할 필요도 있다. 기술적으로 다양한 평면을 개발해 이를 지원하고 맞춤형 경량 자재 개발을 촉진하면서 소요비용을 장기 저리로 융자해 주는 것은 지원책으로 볼 수 있다.
주택공급을 위한 정부와 민간의 공동 노력으로 총량으로는 이미 주택보급률 100%를 초과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신규 공급이 필요치 않은 것은 아니다. 이제는 택지에 쓰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기존 주택을 어떻게 하면 잘 활용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야 할 시기다. 이젠 주택에도 '아나바다(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는)' 운동을 펼쳤으면 한다.
이봉형 주택관리공단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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